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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비
2017 한국 NGO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 2018년 시문학 등단, 2018년 역동문학상 신인상, 2019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9년 역동시조낭송대회 금상, 수필집 <내 오랜 그녀>, <시간이 멈춘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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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렌지 사용법
눈물을 넣고 렌지를 켜면 구름이 될까
토막 난 생선처럼 비릿하게 앉아서
기억의 긴 회전축을 말없이 지킨다
냉동실을 정리하다 동태와 눈이 맞았다
얼마나 뜬눈으로 냉기를 삼킨 걸까
박제된 눈빛을 넣고 그날을 녹인다
해동 버튼에 절룩이며 돌아가는 초저녁
전복된 트럭 속에 매달린 한 사내
얼굴은 도로에 널린 상자들을 지킨다
삐~하는 부저 음이 귓전에 팔딱일 때
녹은 생선 꺼내고 탈취 버튼을 누른다
조각난 사내 냄새가 바삭하게 날아간다
뒤로 걷는 계절
-치매
베란다에 던져놓은 양파가 싹이 났다
연초록 긴 빨대를 몸 위에 꽂고 누워
짓무른 시간 속에서 거친 숨을 삭힌다
살점을 벗길 때마다 젊은 날이 둥글게 진다
손끝에 비린 향은 노모의 아린 눈빛
기억을 붙잡으려는 거미줄처럼 진득하다
창가에 노을빛이 얼룩져 쿨럭이고
번지는 지난날이 검붉게 멀어질 때
당신은 얇은 몸으로 두꺼운 봄을 건넌다
목련
손끝에 하얀 깃발 총총히 내걸었다
봄마다 항복 외치는 행복한 포로들
눈부신 햇살 탄환에 투항하며 벙그는 꽃
염소
말뚝에 묶인 듯 네 눈길에 묶여서
진종일 언저리를 빙글빙글 맴돈다
네 곁에 식물로 선 채 푸른 울음 삼키며
세면대
그대는 피도 살도 다 버린 흙의 뼛조각
천이백도 가마 속 단단한 열정이다
고요한 불기둥 태워 익은 그대 꺼낸다
창백한 그대 얼굴에 오늘을 씻어내면
피로에 젖은 한숨 누렇게 떨어져도
구겨진 네 표정들을 말없이 받아낸다
반짝이는 하얀 얼굴 웃으며 날 당길 때
고단한 내 표정이 입으로 녹아들고
하루가 모자이크로 쪼개져서 흩어진다
라면이 물을 만났을 때
날아오른 주먹에도 뾰족하게 부서질 뿐
말캉한 속마음을 누구에게도 준 적 없다
어둠을 파먹는 부엌 새벽의 눈이 빛난다
가느런 옷을 벗고 당신을 두드린다
생각의 줄기들이 꼬불거리며 스크럼 짤 때
굳은 몸 슬며시 밀어 당신에게 넣는다
당신은 서서히 열기를 더해가고
안긴 채 떠오르는 내 살의 가닥들
온몸의 젖은 세포를 한 올 한 올 풀어놓는다
문장대*
하늘의 귓속으로 파고드는 노을의 벽
내 품으로 파고드는 서늘한 너의 눈빛
저무는 가슴에 기대 숨소리만 듣는다
머릿 속 글자들이 어지러이 춤추는데
시가 될 수 없는 인연은 지우자고
기어이 손을 놓았던 그렁그렁한 저녁 산
*충복 보은군 속리산에 딸린 높은 봉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