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 시조나라 작품방
시조감상실
  • 현대시조 감상
  • 고시조 감상
  • 동시조 감상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신춘문예/문학상
  • 신춘문예
  • 중앙시조백일장
제주시조방
  • 시조를 읽는 아침의 창
시조공부방
  • 시조평론
휴게실
  • 공지사항
  • 시조평론
  • 시조평론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박진형 시조집 <어디까지 희망입니까> 등록일 2022.12.29 21:04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13


희망이.jpg


-------------------------------------
박진형

전남 구례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람서울대학교 불어교육과(학사), 불어불문학과(석사), 외국어교육과(박사 수료졸업. 2016년 시에로 작품 활동 시작. 201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시란 동인문학 동인Volume 회장 역임웹진 시인광장》 편집장 역임용인문학》 편집위원시에문학회 부회장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한국작가회의 회원. 2022년 용인문화재단의 문화예술공모지원사업에 선정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지원 사업에 선정

-----------------------------


파프리카


슬픔은 언제나 노랗거나 빨갛죠

빈속에도 향내 품어 낯빛이 달곰해요

세상이 등그레져요

은밀한 소리 들리나요


아침 햇살이 탐내도록 살갗은 윤기 나죠

핑도는 눈물 따위는 더 이상 없으니

어깨가 볼록해질 때

한 입 깨어 무세요


입맛의 개수만큼 별꽃이 피어나죠

가느다란 바람벽은 세상과 나의 경계

언제나 떠나도 좋아요

허풍쟁이로 살게요



5월 꽃자리



꽃잎의 바랜 것은 흉허물이 아니지

감춰진 꽃의 분묘는 무늬  뒤 쓸쓸함인가

꽃자리 버리지 못해 애써 어루만진다


보도블록 한가운데 시든 꽃잎 나부낀다

머릿속 헬리콥터 공중을 맴도는데

광풍에 뜨겁게 지워버리고 싶은 봄


눈에 밟힌 5월은 몸부림치다 사그라들지

자질자질 장아진 꽃 외면하지 말라고

아픔이 지난 뒤에도 그 자리 아플 테니까



제주 동백



돌담에 정낭 세 개 꽂아 잠근 꽃이다


꼼짝없이 앓던 금서 얄캉한 몸피 드러내


속울음 달빛을 건져 슬어놓은 꽃봉오리 



배롱나무의 배후



각혈로 받아낸 꽃대 비천한 몸 만집니다

전생을 기억 목 해 꽃잎마다 무너진 마음

울음은 가장귀 말리며

저리게 파고듭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머리 풀고 건너간 당신

혼자 남아 코끝 시려 고깔은 물결 집니다

명치가 서늘해진 날

줄기는 헐벗습니다


정수리 간지러워 바람이 소슬합니다

다홍색 떠올라 목청이 막힙니다

설움에 눈이 감겨서

백날 붉은 부처꽃



정오의 바다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1. 제주, 4월


정오를 가리키며 명전하는 해시계

오싹한 4월의 공기 외딴섬을 휘감아

불길은 돌을 태우고

바람은 흙을 흩는다


#2 올레길


올레길 할머니가 굽은 등 업고 간다

살아남은 고통은 혼자만의 몫인지

말없이 진저리 쳐도

끝내 살아야 한다


#3. 북촌포구


저승까지 가지고 갈 테왁과 망사리

물질 끝낸 해녀들이 윤슬로 물드는데

태양은 정오를 삼켜

암전하는 북촌포구



익지 않은 설움이 봄 그늘 아래 빛날 때



낯익은 발자국이 그림자를 만든다

동백나무 아래서 동부새를 버티며

얼마나 많은 밤들이 갯바람에 삭았을까


익지 않은 설움에 녹슨 대문 붉어질 때

봄 그늘 바라보다 동백꽃 떨어진다

서로를 건널 수 없어 시간을 솎는 눈동자


하오의 느린 졸음 담벼락에 달라붙어

강마른 살갗 위로 고된 물때 비친다

윤슬이 피어날수록 그늘은 짙어간다



몽당연필 심법 心法



줄어들수록 빛난다 

한 생의 나이테



머나먼 몽골 땅 향나무 숲 버리고

날마다 뾰족해지려

내 몸을 던진다



통점이 없어져서 깎일수록 부릇된다


얄따랗게 잘려 나가 더욱더 벼려진 나



적멸을 맛보기 위해 칼날을 보듬는다




마네킹 토르소



중심에서 멀여져 세상을 서성일 때

하루를 팔 수 있다면 몸이라도 내놓을까

똑같은 표정에 갇혀

지갑을 유혹한다



팔다리가 없어도 얄궃게 나를 파는 날

거울에 비친 환상통*을 바코드로 읽는다

오후가 달라붙는다

바닥이 흔들려도



* 절단된 사지에서 느끼는 통증성 감각 이상. 




물고기자리



꿈을 꾸던 물고기 긴 잠에서 깨어나

비늘 없는 살갗에 양수가 스며들 때

별자리 돋친 지문에 소금꽃이 번진다



어머니와 나 사이에 탯줄이 사라진 날

투명한 눈동자에 비치는 별 서러워

손끝에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 가맣다



내 안에 잠들었던 물고기가 깨어나면

별이 된 어머니가 하늘에서 쏟아져

심장에 물고기자리 또렷하게 새긴다





뒤숭숭한 울화통을 온몸 가득 채운다



업을 짓는 입을 닫고 휴지통은 묵언수행 중



자신을 온통 비운다

감당할 수 없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