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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공화순 시인 시집엿보기 등록일 2019.01.30 16:20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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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패터슨*의 날

 

 

가장 평범한 것을 아름다움이라 말한다

 

소소한 내 일상도 시가 될 수 있을까

 

틈틈이 써내려가던 패터슨의 시처럼

 

반복되는 하루를 사랑할 수 있다면

 

변주 없는 생활도 노래할 수 있다면

 

오늘은 시를 쓰고 싶다, 아무 일도 없으니

 

 

* 패터슨: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 버스운전사 패터슨이 소도시(패터슨)에서 소소한 일상의 기록들을 시로 적어가는 시집 같은 이야기이다.

 

 

 

모퉁이에서

 

 

지금 막 모퉁이를 빠져 나왔습니다

아직도 당신은 그곳에 있는 건가요

모서리 그 안쪽에서 지금을 떼어냅니다

 

거기서 시작됐던 이야기의 실마리도

돌아선 순간부터 이마 날 지나쳐서

옛일이 되었습니다

돌아갈 수 없습니다

 

길목마다 따라와 놓지 않던 손길을

차갑게 뿌리치며 이제야 돌아섭니다

가세요, 망설이다간 붙들리고 말거예요

 

돌아서는 것들은 회색빛 표정을 짓고

그리움을 놓지 못해 이명으로 떠돌다가

저만치 손짓합니다

시간의 귀퉁이에서

 

 

 

풍선

 

 

언제나 같은 꿈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바라만 봐도 터질듯한 이 긴장,

 

얼마나 가득 채워야 저 하늘로 날아오를까

 

거뜬히 꼭대기까지 닿을 줄 알았어

 

매끈한 살가죽을 살짝만 터치해도

 

저만치 물러서는 꿈을 팽하게 좇곤 했지

 

이제껏 날지 못한 내 가슴 금빛나래는

 

힘없이 늘어져 펼치지 못한 드림 켓(Dream-ket)

 

오늘도 공중에 매달려서 그네를 타고 있다

 

 

 

열쇠

 

 

굳게 다문 사각문을 마주하고  설 때면

 

그 너머 안쪽 세상이 조급증을 부추켜


꾹 다문 구멍 속으로 거침없이 밀어 넣는다

 

비집고 들어가서 비틀어야 열리는 사랑

 

실랑이를 벌이다 못 이기는 척 풀어주다

 

느슨한 부드러움으로 덥석, 나를 물었다

 

 

연애고자

 

 

불길한 예감은 늘 적중하는 편이어서

 

시작도 못해보고 연애는 끝장나고

 

감정은 어리석어서 저 혼자 이별하지

 

후회는 사랑보다 질기게 들러붙어

 

그때마다 쓰린 맛에 눈물 찔끔 빼다가

 

번번이 정신 차린 후 도 다시 빠져드는 너

 

 

가랑눈

 

 

小雪 지나 내린 비가 쌓이는 날입니다

 

가지 끝 투명하게

벗어내는 사연들

 

온밤 내 오랜 약속처럼 창밖을 서성입니다

 

 

가을이 가는 길을 한사코 막아서며

 

사늘히 비껴가는

그 길목 어딘가에

 

남몰래 어둠을 밟고 가랑눈이 다녀갑니다

 

 

 

유년의 우물

 

 

우물은 내 유년의 기록을 쥐고 있다

 

들여다 볼 때마다

빤히 보던 그 표정

 

또 너니, 바닥을 꼭 쥐고 올려보던 검은 눈

 

 

두레박을 철썩 내리면 내 얼굴을 흩었다

 

어저께 잡다 놓친

참외 하나 내어주고

 

가만히 시치미를 데며 먼 하늘만 그렸던

 

 

 

밤눈

 

 

눈 내리는 밤이면 잠귀가 자꾸 돋는

 

어둠은 산통을 겪는지 내 뒤척이고

 

산자락 베이는 소리

가슴이 선뜩하다

 

 

눈 뜨자 와락 드는 소복한 모서리가

 

날선 각 숨겨두고 곡선으로 안긴다

 

구름은 첫국밥을 뜨나

하늘 텅 비어있다 

 

 

꽃, 자귀

 

 

소문만 무성했던 유월이 입을 연다

 

숨기면 더 커지는 의혹을 참다못해

 

그녀를 사랑했다고

 

폭죽으로 터진다

 

 

사뿐, 봄

 

 

볕으로 손을 내민

잔가지가 술렁인다

 

일찍 눈 뜬 잎들이

봉긋봉긋 꼿발 들자

 

저만치

물오른 길로

산당화 사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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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순

경기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졸업

2016년 <시조문학> 등단

수필집 <지금도, 나는 흔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