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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이유채 시인 시집엿보기 등록일 2019.02.07 20:19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590

이유채.jp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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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채

인천출생

인천교육대학 졸업

서울에서 교편생활

2012년 한국문인협회 해남백일장 최우수상

2014년 9월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2014년 정형시학으로 등단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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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동에서 트럼펫을 만나다

 

 

늙은 골목 둘둘 말아 얼굴 내민 저 트럼펫

햇빛아닌 어둠 한 켜 검버섯 피어나도 

하 세월 비음을 삼켜 목덜미가 뜨겁다

 

밤마다 뛰쳐나와 불을 켜는 포장마차

들숨날숨 겨운 날은 연주밖에 없노라고

오늘도 온몸 비틀어 시나브로 연주한다

 

예도옛적 이 도시에 음표 둥둥 떠다녔지

들떠오른 그 너름새 비바체로 사라지고

사람들 가난한 자의 흰 꿈으로 쌓였다

 

빗장 건 창문마다 커튼 내린 한겨울에

부대낀 시간 모두 슬픈 음역 되더라도

좁은 길 지키고 앉아 성에의 밤 닦는다

 

 

땅바닥 경전

 

 

검은 의상 단 한 벌로 몸매 가린 엄지발톱

봄빛 건 듯 얼비치면 세상 참 아득하고

또다시 찾아온 축제, 달려가는 서산 장날

 

눈에 익은 행길마저 가끔씩은 멀어질 쯤

물 위에 뜬 저 난파선, 떨어져 나온 뼈 조각

움푹 팬 두 눈을 감고 바람의 길 새긴다

 

허공을 날아와서 아지랑이 되어버린

밀봉당한 한 세월이 발밑을 배회할까

쉼 없이 주문을 왼다, 아제아제 바라아제

 

비린 숨 붉은 눈물 햇볕 골라 말려 놓고

몸속의 장기마저 유리알로 반짝일 때

지상의 저 검독수리 산정에 날리고 싶다

 

 

백 년의 허기

 

 

바람이 보듬어준 한길가 붉은 우체통

한뎃잠 이골이 난 시린 노숙 골이 깊다

옆구리 돌돌 말고서 외등 불빛 바라본다

 

심 닳은 몽당연필 침 발라 쓰던 펴지

앙가슴 복받칠 땐 눈물 울컥 치밀었고

새하얀 편지지 위엔 꽃잎들이 수북했다

 

레일 위를 지나가는 간단없는 바퀴소리

가물가물 밀려오는 잠의 자락 그 끝 무렵

눅눅한 먹빛 하늘에 하루해가 떨고 있다

 

까마득 사라졌어도 새가 울던 지난 세월

곱다란 잎새마다 깨알같이 적었던 글씨

별 총총 스민 발자국에 만종 소리 넘친다

 

 

그네의 시간

 

 

흔들리는 꿈을 꾸는 칠흑의 검은 밤

바람도 불지 않는 날 온몸은 굳어가고

별들을 불러보려고 눈꺼풀 들어올린다

 

불황이다 국가부도다 소문이 난무해도

제 가슴 속 불길 따라 제각기들 바쁜 이들

새처럼 날아갔다가 부나비로 돌아오고

 

그 누가 매어놓았나 그리움도 되지 않는

공터에 방치해놓은 이방인 같은 벽화 한 장

날마다 혼자 쓰는 문장 발밑에 수북하다 

 

 

가마솥 보고서

 

 

아버지 공사판에서 쓰다 남은 파지장작

재래식 아궁이에서 혀처럼 불 붙는다

나이테 지우는 나무 불면도 털어낸다

 

깊숙이 마음 심어 곧추세운 푸른 기억

깜깜이 변해버린 역사의 현장에서

노루는 초원을 찾아 자화상 그리고

 

불꽃이 기세 좋게 어깨춤 추는 동안

매끼마다 쌀 안친 가마솥 밑바닥에서

한 번도 몸 태운 적 없는 우등생 모범 답안

 

한지같이 바삭하게 노릿노릿 익은 몸

간식으로 먹고 자란 무쇠 같은 아이들

지금은 그 시절 잊고 태평양을 건넌다

 

 

섶 섬

 

 

한 땀씩 어둠 펼쳐 저며 온 풍경처럼

벼랑에 가지런히 펼쳐놓은 길 마냥

오래된 수묵의 세상 은빛으로 빛난다

 

갈매기 깃 내리고 한없이 넋 놓은 듯

초록 색깔 떨치며 내뿜는 숨이 강렬해

바닷가 둘러앉아서 풀꽃이 된 사람들

 

 

건빵이 있는 방

 

 

이불 밑에 숨겨 놓고 야금야금 먹는 건빵

군부대 중사의 방 신혼집이 있었다

우리는 굶주리지는 않는다고 떠들던 여자

 

허구헌 날 그 방문 앞 쭈그리고 앉아서

아작아작 씹는 소리 그 음각을 붙들고

꽃 하나 그려봤다가 새 한 마리 그렸다가

 

먹던 과자 이불 밑에 감쪽같이 숨겨놓고

벌컥하고 열어제낀 여닫이 문 신부의 손

두 눈 착 내리깔고서 벌떼 쫓듯 내젓던 손

 

 

재활용 용품점

 

 

손때 묻은 시간들을 오롯하게 끌어안고

또래끼리 키를 맞춘 잡동사니 용품들이

익숙한 웃음 한 끝은 세파 속에 밀어 넣는다

 

길 건너편 마네킹에 하얀 새 옷 입혀지고

리모델링 신장개업 쇼윈도 화려해도

거꾸로 태엽을 감으며 부처처럼 처연하다

 

삐걱대던 자국들이 구석구석 너부러져

넘어졌다 도로 서는 절둑이던 이승의 길

가면을 벗은 민낯이 박꽃 저리 환하다

 

 

 

 

손님 없는 카페 귀퉁이 턱 괴고 앉았다가

 

버지니아 울프처럼 주머니에 돌덩이 넣고

 

천천히 발걸음 떼는 그 동작 그 마지막인 듯

 

 

늑대 같은 안소니 퀸 말없이 떠나간 뒤

 

인적 없는 골짜기에 홀로 남은 젤소미나*

 

별 자락 덮고 누워서 스르륵 잠들 듯이

 

 

 

*영화 <길>에 나오는 여주인공 이름

 

 

소래포구 에필로그

 

 

정박된 목선마다 올라앉은 괭이갈매기

 

감감해진 그리움 울음으로 풀어낸 뒤

 

어디로 날아갔을까?

 

초저녁만 남기고

 

사는 게 허전해서 품고 온 피조개들

 

일용할 양식으로 해금되어 데쳐질 때

 

선홍색 그 몸을 삼켜

 

밀썰물을 지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