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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해
1947년 경남 남해 출생
1983년 <현대시조> 천료
1988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나래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한국시조시인협회상 수상
작품집으로 <치자꽃 연가>, <흔들려서 따뜻한> ,<투승점을 찍으며> 등 다수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나래시조문학회 회원
파종
지상의 서투른 언어들을 거두어서
싹 틀 날 있어라 흙 한 삽 덮어 두네
간절한 육필을 덮네 맨몸 바닥 백지 위
만근萬斤인줄 몰랐다
거기 오래 당신 없어 고향집 쓰러질 듯
빈 집 애처로워 제값이라 팔았는데
이상한 거래도 다 있다 고향이 없어진
고향을 잃어버린 남의 동네 서먹하다
하늘과 바람이며 갯바위나 파도까지
덤으로 팔려버렸다 어이없이 밑진 장사
그게 그렇게 고향산천 떠받치는 줄 몰랐다
마당만 몇 평 값으로 팔았다 싶었는데
낡은 집 한 채 무게가 만근인줄 몰랐다
깊은 강
내 사랑 어디에서 길을 물어 볼 것인가
사람들 웅성거림 말이 되지 못한 말들
불꽃만 살아 춤추는 제 할일을 하느니
만나고 헤어짐이 태우고 씻는 거라면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다시 또 흩어지는
먼 훗날 한 줌 재를 모아 갠지스에 온다 하리
치장할 그 무엇도 남지 않은 얼굴이다
이승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오르면서
꽃다발 꽃잎 몇 장으로 깊어지는 강이 있다
가을, 허수아비
선 채로 늙어가는 그런 길도 있다는 걸
발목을 빠뜨린 채 한 생이 저문다는 걸
알면서 제 할 일 끝낸 저 넉넉한 파안대소
11월
-귀향
곱게 물든 감잎들이 벗은 발 닦는 늦가을
서리 묻은 깃을 털며 누군가 대답할 듯
붉은 감 아직 붉은 나무
꽃목걸이 고요 한 줌
해거름 산그늘 지는 나이가 저물기 전
주소 적고 우표붙인 감잎편지 시들기 전
그 글씨 읽는 이가 읽는
뜰 안 가득 생의 후편
입춘, 그 따뜻한 말
마른 손 잔가지는 된바람에 시달려도
투명 허공 쓰다듬는 나무들을 보리라
겨울 눈 그 가운데서 꿈틀대고 있을 때
혈관처럼 뻗은 뿌리 발밑을 간질인다
땅 밑의 수만 소식 맨발인 채 올라오며
한 웅큼 엷은 햇빛도 놓치는 일 없다
살면서 팔을 벌려 나무를 닮아간다
풀리는 하늘 한 쪽 내 하늘로 당겨두고
나무들 따뜻한 말을 두 손 모아 받는다
돝섬, 그 섬이 있다
고향을 떠나올 때 따라온 섬이 하나
때로는 느닷없이 덮치던 너울파도
든든한 아두박근 세워 대신 젖던 흠뻑 젖던
퇴고
말갛게 유리창을 닦으며 닦으면서
괜한 마음으로 한 번 더 닦고 간다
걸레질 지나간 자리 도로 생긴 얼룩들
감당할 만한 기도
내가 먹은 하루치 양식 하루치 즐거움
걸어간 하루치의 거리와 하루치 상처
돌아와 몸을 누이는 한 사람 몫의 침대 넓이
억새꽃
마을이 서걱댄단 말 오늘에야 알겠다
달포 사이 어머니 아버지 나란히 모셔놓고
술 한잔 올릴 수 밖에
억새처럼 우두커니
흰 빛깔 속울음이 찬바람이 거칠다
서걱대면 서걱대는 대로 내어주느니 몸과 마음
바다가 선산발치에서
다독이느라 출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