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례==================================
목련 / 홍류동 계곡 / 입동 / 겨울 메타세쿼이아 / 오동도 동백 /
점자블록 / 태양의 혀 / 스프링쿨러 / 이팝꽃 // 실직 / 신도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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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
창백한 순백의 여인 나직이 고개 떨구고
빈 창가 문 두드리며 파르르 떨고 있다
팽팽한
젓가슴 부풀어
속살이
보일듯
말 듯
홍류동 계곡
마침내 저 붉은 외침 이파리들의 반란
삽시간 번져 오는 걷잡을 수 없는 혁명
머리채 붙잡힌 산자락
물속에 감금당하고,
입동
늦가을, 마른 숲들이 일제히 쿨럭인다
항홀히 바스러지는 저 환한 폐부 한쪽
여태껏 보지 못했던 실핏줄들이 불끈하다
겨울 메타세쿼이아
그대, 푸른 청춘은 어쩌면 한순간이었지
미련없이 벗어라 절명의 옷자락이여
심장에 수직으로 선
정지된 나의 피사체
오동도 동백
그리움에 목이 타는 한 여자를 보았네
안개 속에 갇혀
눈시울 붉히는
한마디
말도 못 건넨
화석이 된
그 여자
점자블록
무심코 밟은 바닥이 누군가의 눈이었다
손을 내민듯한 울퉁불퉁한 촉수였다
틈 사이 갇혀 있었던 누군가의 길이었다
태양의 혀
때론, 독기 품은 숨겨 둔 칼날이었다가
세상 다 녹일듯한 자애의 모습으로
물렁뼈 붉게 자라는, 더 붉게 말言이 자라는
스프링쿨러
저리 공중을 향해
내뺕는 한마디 말
독백으로 젖는 따뜻한 파편들이다
굶주린
광야의 백성
비로소 환한 얼굴
이팝꽃
나이들면 밥심으로 산다 하시던 아버지
서너 달 곡기 끊고 빈 밥그릇 되어 갔다
헤식은
쌀밥 한 그릇
고봉으로 피었네
실직
어둔 골목 내딛는 사내의 발자국 소리
닳은 구두 뒤축, 밤마다 달빛을 밟네
삐거덕
삐거덕 거리는
저 늦은 밤의 귀가
신도시
가난이 죄인 양 무더기로 쫓겨났습니다
그림자조차 남김없이 싹둑, 잘렸습니다
흉흉한 소문을 밟고 거만하게 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