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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임채성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11.20 21:0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255

=======================차  례 =====================================

봉정사 극락전에서 / 광릉 크낙새 / 철거지대 / 닭둘기 / 춘분 무렵 / 봄을 세일합니다 /

자구내 해넘이 / 독도 시편 / 축제의 끝 /

============================================================

봉정사 극락전에서

 

 

극락이 있다길래

극락전 보러 갔지

 

극락을

빌러 온 사람

극락전 뜰에 줄을 섰네

 

극락도 만원이구나

 

극락 가긴

영 글렀네

 

 

광릉 크낙새

 

 

퇴락한 왕조사가 낙엽 아래 몸을 묻네

무덤가 잔디마저 머리가 센 세상읠 뒤꼍

노을에 제 살 태우는 가을이 익어가네

 

밑동 잘린 갈참나무 등걸에 걸터앉아

누군가 뚫어 놓았을 구멍 하나 우러른다

깊은 속 가늠 못하는 그 내밀한 둥지를

 

바람도 이쯤에선 무슨 말이 하고픈 게다

정사도 야사도 아닌 철 지난 소문들을

온 숲에 사발통문처럼 다문다문 풀어놓고

 

묘비명에 쪼아 새긴 실록의 한 자락을

크낙새 부리 끝에서 더듬어 찾는 동안

못다 운 왕조의 울음 크낙크낙 울려오네

 

 

철거지대

 

 

뉴타운 현수막 아래 엎드린 몇 채 집들

 

까치마저 떠나버린 먼지 쓴 전깃줄엔

 

마지막 몸부림인 듯 빨래가 나부끼고

 

풀기 없는 낯빛으로 아침을 끓이는 아낙

 

코흘리개 재워놓고 갓 돌아온 노래방에서

 

간밤엔 누굴 끌어안고 희망가를 불렀을까

 

불도저 엔진 소리에 다리 풀린 하루가 간다

 

쨍쨍한 대낙에도 서둘러 저무는 하늘

 

천국은 큰 교회 첨탑 그 끝에만 있나 보다

 

 

닭둘기

 

 

야윈 목에 말라붙은 허기진 햇살 한 점

지난밤 토사물에 뭉툭한 부리를 씻고

비상의 죽지를 접은 절름발이 하루가 간다

 

온종일 시린 맨발, 어디를 디뎌야 하나

보도블록 깨진 틈새 하데스 허방 같은

풀 냄새 사라진 땅에 제 이름을 묻는다

 

잿빛 도시 어디에도 깃을 털 숲은 없다

둥지마저 철거당한 무허가 노숙의 나날

무심한 눈빛에 찔린 가슴이 또 아리다

 

그믐밤도 달이 뜨는 빌딩 숲 불면의 밤

누울 수도 설 수도 없는 난간 아래 홰를 치다

동트는 새벽 어귀에 닭 울음을 토한다

 

 

춘분 무렵

 

 

불임의 한 여자가

양수 왈칵

쏟고 있다

 

실핏줄 도드라진 계곡,

진달래 꽃술마냥

 

몸 풀자

발정 난 대지

 

다, 다, 다산이

시작된다

 

 

봄을 세일합니다

 

 

표는 또 매진이다,

한 뼘 접은 치마 위로

선웃음 한 꾸러미 찾잔 속에 포개 들고

모텔 방 늘어선 골목,

시간을 배달한다

 

얼룩진 쟁반마다 낮밤 없는 비린 살내

앞섶 푼 여런 꽃잎 뚝뚝 지는 난장에서

생무지 장꾼의 하루,

두 볼이 홧홧하다

 

몸만 달뜬 불협화음 이중주를 훔쳐 보다

마디 큰 신음에 섞여 흐늘대는 지폐 몇 장

갓 스물 쪽방 가슴이

황사비에 젖고 있다

 

 

자구내 해넘이

 

 

머리 푼 구름들이 먼 하늘로 타래 친다

갈지자 높바람에 메밀곷 핀 포구 너머

흉어기 저녁 바다가

속 빈 매운탕을 끓인다

 

아흐레 멀미에 지친 차귀도도 드러눕고

거품이 거품 물고 부침하는 냄비 해안

가슴에 구멍이 뚫ㅇ\린 돌덩이만 그득하다

 

장기부채 고봉밥에 더 허기진 수월봉엔

간신히 수저를 든 창백한 낮달이 홀로

고수레, 고수레하며

별빛 가만 뿌리고 있다

 

 

독도 시편

 

하늘도 내 앞에선 낯빛 고이 가다듬네

메밀곷 핀 난바다에 삼각파도 드높을 때

동트는 수평선 위로 창검을 벼리는 섬

 

쇠비름 박주가리 납작 엎딘 바위틈엔

참억새 마른 대궁 바람에 맞서 있다

푸른 빛 다 스러져도 잎에는 날이 선다

 

햇살 바른 앞가슴께 둥지 튼 슴새 떼가

애오라지 물어오는 물 소식 한 토막에

느꺼워 목 메인 날은 휘파람을 날리고

 

백두의 말석에서 지켜 온 직립의 결기

일란성 오뉘라서, 홀이 아닌 둘이라서

샛바람 치대는 밤도 외롭지는 않겠다

 

 

축제의 끝

 

 

 

바람

바람

바람이 분다

이제 그만 떠나야 한다

 

열흘 치 립스틱을 닦는 꽃들의 늦은 오후

 

황금빛 자오선에도 어스름이 내린다

 

축제의 마지막은 폐비처럼 처연하다

 

화장 지운 민낯으로 봇짐 싸는 가지 사이

 

삽시에 장막을 치며

불쏙 솟는

초록 깃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