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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황영숙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12.20 09:5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006

=====================차 례 =========================

등대/ 크리넥스/ 풍경/ 바람개비/ 원룸일기/ 벽/ 봄날/ 바지랑대/

젖소, 어미 / 얼음꽃/ 탱자꽃/

==================================================

 

 등대

 

 

 

가만히 귀 대어 보면 나처럼 울고 있다

 

닿으려면 멀어지는 저 물길 파장波長 따라

 

징-지징 무쇠소리로 아버지가 울고 있다

 

 

밤무대 여가수처럼 목이 쉰 어머니가

 

밤마다 부두에 나와 노래를 하시는지

 

버텨 온 아랫도리가 흠뻑 다 젖었다

 

 

크리넥스

 

 

결 고운 연緣을 따라 겹겹이 접은 후에

포실한 세간살이 한 방 가득 채워 놓고

살포시 앞섶을 열고 기다리고 있나 보다

 

뼛속까지 송두리째 그리움을 주체 못해

끊어질듯 이어지며 풀어내는 사미인곡

맞대고 지새우는 밤, 허락하고 있나보다

 

 

 

풍경

 

 

뇌경색 경보를 받은

매화나무집

할머니

 

금일내로 돌아올 듯

버선발로

가셨는데

 

애꿎은 돋보기 하나

머위 밭에

앉아있네

 

 

바람개비

 

 

더러는 멈춰 서고 더러는 돌아간다

접혀진 방향을 따라 함께 했던 시간들

철새들 날아간 쪽으로 기운 축이 헐겁다

 

더러는 멈춰서고 더러는 돌아간다

애써 돌리려 마라 그냥 또 그렇게

원시림 가지 끝에서

쉬어 가는 잔바람

 

 

원룸일기

 

 

벽 하나 사이에 두고 남남으로 살지만

부실공사 탓하며 귀를 막고 살지만

따스한 저녁을 위한 수저 소리 정겹다

 

너무 커서 우주를 품고

너무 작아 내 안에 드는

나만의 밀실하나 불 밝히며 데우며

 

남루한

나를 허문다

순산의 꿈을 꾼다

 

 

 

 

독한 그리움에도

발 한 번 떼지 못하고

 

해마다

뻗쳐오르는

담쟁이 그늘에 덮여

 

말없이

불러야 할 이름

운명인 줄 압니다

 

 

봄날

 

 

무 밭에 아기별꽃

개불알꽃 부추꽃

 

채소밭의 풀어거나 풀밭의 채소거나

 

옆자리 서로 내어주며

가야 할

길이 있다

 

 

바지랑대

 

 

 

올해로 삼년 째다 역할이 바뀐 지

할머니 입원한 뒤 수문장을 자처하며

삐닥이 담장을 물고 불청객을 감시한 지

 

 

황달이 채 덜 가셔도 훌훌 털고 오시기를

일어나 젖은 생을 척 걸려 말리시길

빈 집을 혼자 받치며 기다리고 있는 거다 

 

 

 

젖소, 어미

 

 

적정량 훨씬 넘겨 불은 젖통 짜놓고

어미는 후줄근히 착유기를 더났다

 

목매기

따로 가둔 날

부러 먼 산 보던 날

 

보채며 매달리던 어린 것 떼어 놓고

불어터진 젖 문지르며 그 날 나도 그랬다

 

밥벌이

그게 뭐라고

그 날 나도 그랬다

 

 

 

얼음꽃

 

 

 

조금씩

서로에게 상처의 말 흘리다가

 

모질게

빗금 치며 돌아누운 새벽녘

 

너와 나

간극 어디쯤

꽃 한송이 피었다

 

 

탱자꽃

 

 

사월이면

다시

하얗게 도지는 병

 

산비둘기 울음소리 적막을 깨트릴 때

 

내 가슴

연둣빛 내력

가시로 남은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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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숙

경남 고성 출생,2011년 <유심> 신인상에 당선되어 작품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