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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배경희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12.26 19:49
글쓴이 시조 나라 조회 1991

===========================차 례==============================

이명/ 먼지의 집 / 가을 저녁 / 난蘭의 겨울 / 늙은 길 / 쇠물꽃 / 가시연꽃 /

흰색의 배후 / 사발면 / 맷돌 이야기

===========================================================

 

이명

 

 

밤이면 귀에서 자꾸 소리가 나는데요

 

바람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요

 

의사가 귓속을 본다

 

미궁에 빠졌군요

 

 

우울한 냄새들도 가끔씩 나는데요

 

그럼요, 잡념이 괴면 고요조차 썩어요

 

쉬세요 내려놓으세요

 

그 곳도 길입니다

 

 

먼지의 집

 

 

장롱 겨드랑이에도 먼지가 늘 자란다

 

매일 닦아도 먼지는 숲을 이루고

 

조금씩 그녀이 삶도

 

그 속으로 쌓여간다

 

바람에 부풀어 터진 지칭개 꽃처럼 눕는다

 

하루를 빨아들인 하루의 무게만큼

 

오늘도 단단히 누워

 

먼지의 집을 짓는다

 

 

가을 저녁

 

 

저녁녘 먼 길에서 날아온 친구 소식

근근이 풀칠하던 멍에에 목맸다고

 

소랭한 거미줄마다

찬바람이 일어온다

 

그의 젖은 삶이 자자히 깊어지고

돌아온 길들과 아직 남은 먼 길들

 

슬픔의 거친 파동에

나뭇잎이 떨어진다

 

오래된 서랍 속의 기억을 뒤적이다

지상에 남겨진 몇 개의 편지들을

 

바람 편 들길우체국에

쓸쓸히 부쳐본다

 

 

난蘭의 겨울

 

1.

마루 위 난 그림자 헛뿔리를 내린다

 

흰 꽃이 머문 자리 정적같이  은미하고

 

물길을 안고 자란 듯

 

구불구불한 뿌리들

 

2.

돌 틈으로 삐죽이 빠져나온 흰 발톱들

 

물을 주면 바스스 타 들어가는 소리

 

얼마나 오래 참았을까

 

날개마다 돋는 초록들

 

 

늙은 길

 

머리에 인 붉은 다라 팔다 남은 옥수수

질긴 그령풀에 발을 자구 놓칠 때

가던 길 길 위에 두고 언덕처럼 앉아있다

 

저녁 해는 저벅저벅 집으로 내려가고

나무도 서두르는 듯 온몸을 뒤튼다

길들도 떠날 채비하듯 굼실굼실 움직인다

 

퉁퉁 불은 신발 따라 먼 길이 이어지고

마음자락 매달린 총총한 어린별들

어머니 주름진 길도 서둘러 걸어간다

 

 

쇠물꽃

 

수만 송이 철꽃들이 용광로에 피어나고

심해의 꽃불에서 날개 돋는 푸른 나비

모루 위 길게 눕혀져 허물을 벗는다

 

찬물에 푸르륵 온몸을 담금질하고

하늘 보고 치고 접어 별 보고 치고 접어

입춘녘 단단한 몸으로 환생하는 쇠물꽃

 

갓 나온 풀잎처럼 파도 문양 어우러진

더운 기 아직 남은 불꽃바람 기억들

달군 쇠 다시 벼리는 망치소리 드맑다

 

 

 

가시연꽃

 

 

집나간

엄마 길은

비린내로 들끓었다

 

늘 젖어

목까지 찬

아이의 분노지수

 

활화산

자기 몸 뚫듯

가시가시 피운다

 

 

흰색의 배후

 

 

그녀의 그림들은 조용해서 춥다하고

색색의 소리까지 흰색에 갇혔다며

 

꽃들의

본색만 찾아

아름답다

수군댄다

 

사과는 빨갛다는 고집스런 집착 속에

총알 한 발 놓는다 중심 뚫고 지나가듯

 

의미가

파편들 속에

흰색이라

읽는다

 

 

 

사발면

 

 

정자에 쭈그린 채

한 노숙이 자고 있다

이불 밑 못 들어간

고아 갚은 두 맨발

웅크린

가로등불이

추운 잠을 지킨다

 

경계하듯 날 세운

앙상한 어깨 위로

오고가는 눈길만

따갑게 훑고 간다

먹다 만

사발면 줄기

꿈틀, 돌아눕는다

 

 

맷돌 이야기

 

 

아무렇게 굴러다닌 노란 푸른 콩알들

이놈의 콩 아까워라 못난 콩 줍던 노모

그 모두 갈아 내놓던 맷돌이 아직 있다

 

식용이 왕성했던 아이들의 주린 배를

참 많이도 먹여주고 채워주던 저 맷돌

지금은 고요와 정적만 구멍에 가득하다

 

낡은 그리움을 소리 없이 갈고 있는

그 사이로 쏟아지는 비릿한 고픔들

어디서 햇빛 콩알들 튀는 소리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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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희

청원 출생.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