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젓가락/ 흑산도 노을/ 초여름 문장대/ 수막새의 달/ 은행나무의 하야/
어떤 천덕꾸러기/ 여름 배꼽/ 퇴근길/ 나비잠/ 담쟁이 새잎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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젓가락
몸도 따로
속도 따로
짝짝이 한 쌍으로
기우뚱
발맞추다
허방 짚는 가시버시
아무렴! 동행의 두 발
사람 인人 자 쓰고 있다.
흑산도 노을
분화구 품어 안고 난바다를 떠도는 섬
갈맷빛 빈 하늘길 철새 떼만 오면가면
불덩이 식히지 못한
사초 하나 무젖고.
화석같이 굳어져도 삶터란 늘 성소일까.
따라지 맨발 따라 탁본 뜨던 세월 뒤로
또다시
젖은 솜처럼
하루 접는 오늘 진다.
날름대는 푸른 불꽃 제 살 깎는 먼 바다에
가없이 너울거리는 괭이갈매기 목쉰 울음
풍화한 벼랑의 시간
해국 한 떨기 설핏하다.
초여름 문장대
책갈피 뒤적뒤적 줍는다, 이삭 몇 낱
잇속 좇는 하루하루 흥정하듯 구걸하듯
한세상 티끝에 절다 속리의 품 안길 때.
빼곡히 찬 초록 장서 생금 같은 숨결 뿜네.
산마루 너럭바위 벽 허문 열람석 너머
첩첩이 경전 펼친 산, 섬이 되어 떠간다.
수막새의 달
숫눈 밟고 걸어오는 애벌구이 앳된 얼굴
눈에 괸 호수 찰랑, 배시시 웃음 흘린다.
진양조 일렁인 달이
이지러진 생을 끌고.
추녀 끝 무릎 꿇고 비손하는 연꽃 세상
만파식적 귀가 멀어 홀로 갇힌 하늘 아래
또다시 숨을 고르고
떠오른 여인의 달.
날개 꺽인 토르소다, 솔기 없이 도담한 선
하현달 차오르는 하얀 법열 강물 이뤄
휘영청!
천년의 미소
빛살 가득 여울진다.
은행나무의 하야
부챗살 초록 바다 일렁이던 제국의 왕
황금 보관 버겁던지 미련 없이 내던지고
텅 비운
하늘 끝자락
융단 길 밟고 간다.
어떤 천덕꾸러기
해거리 파도 타는 저 밭이랑 넘실댄다.
똬리 튼 눈물 자루 길섶 한켠 양파의 성
풍작의 짙은 그늘에 나앉게 된 노숙자.
씨알 굵은 살붙이들 땡볕에 모로 누워
하늘가 어느 지붕 밑 깃 접을 곳 찾고 있나.
빛바랜 스펙 걸치고 한뎃잠을 청한다.
여름 배꼽
1.
풀빛 아이 물장구질 매미 울음 흩는 한낮
공중제비 넘는 버킷, 배꼽 와락 물 폭탄에
휘우뚱!
땡볕을 안고
부서지는 물보라.
2.
배꼽들이 활보한다, 애먼 태양 원죄인가.
허물 벗은 이브 허리 뱀의 혀 날름거리는
이 한철
천둥벌거숭이
면죄부라, 면죄부라.
퇴근길
뒷굽 닳은 신발 끌고 허겁지겁 오가는 길
긴 그림자 드리우고 돌아서는 뒷모습을
여울 목 흘러온 강물
판화 한 장 찍어낸다.
늙은 나귀 걸음 같은, 게으른 그 퇴근 시간
플라타너스 그늘처럼 깊디깊은 눈망울로
길 따라 밀물져 오는
어둠 한 짐 덜어낼까?
나비잠
흰 연꽃 탐하다가
잠의 수렁 빠져든다.
너울너울 꿈길 따라
꽃살문 건너는 한낮
귀 째는 매미 울음에
아기 나비 움찔한다.
여린 발목 미처 못 뺀
고깔 쓴 무딘 춤사위
기슭에 핀 일곱 빛깔
무지개를 쫓아가다
보시시
웃음 직는다.
배냇짓하는 날에.
담쟁이 새잎 나다
담벼락 움켜잡고 곧추서서 참선하듯
여위고 마른 덩굴 수액마저 돌지 않고
봄 마중 시새우는가.
한눈팔며 더디 온다.
대지를 적신 비에 살그머니 움은 돋아
불그레한 조막손을 가위처럼 펼쳐든다.
담쟁이 새잎 매달고
면벽고행 드는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