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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권영오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7.07.10 21:0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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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오

경북봉화 출생
2005년 <열린시학> 등단
시집 <귀항>, 산문집 <이빠의 독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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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
 
 
 
밝히는 것은 누구에게나 고통이지만
밟는 것은 가난한 자에게도 쾌감이다
난생 첨 열어보는 선물 같은 길을 나서는 것
 
아무도 분간할 수 없는 뻔한 길가의
저 지친 설경도 픙경은 풍경이지만
움츠린 발자국 위의 발자국은 광경이다
 
 
 
첫차
 
 
첫 시내버스 풍경은 먹먹한 구석이 있다
묵묵한 뒤통수들, 막막하기도 하다
떨어진 기온에다가 바람까지 거든다
 
어제는 빵빵하게 틀어주던 히터를
오늘은 찔끔 흉내만 내고 있다
대체로 이쪽의 삶이란 엇박자가 난다
 
제식훈련 할 때 죽어도 발을 못 맞추던 것처럼 
기우뚱 기우뚱 대며 겨울이 깊어간다
더 멀리 가기 위해서 더 깊이 흔들리는 아침
 
 
곱창 골목
 
 
 
막창과 곱창을 함께 섞어 구우며
깨끗이 때를 밀고 불판 위에 올랐을
짧았던 어린 짐승의 생애를 생각한다
 
이렇듯 불지옥마저 견디는 게 삶이라고
바지에 똥을 지리듯 처절한 냄새 피우며
막창에 암을 달고 떠난 친구를 생각한다
 
막창이나 막장이나 종점이 가까웠다는 것
푸르게 불타오르는 불판을 갈아놓으며
가쁘게 흘러내려 갈 토사곽란을 생각한다
 
 
오목
 
 
백일홍 꽃이 지고
백일홍 잎이 지고
 
진자리 비가 내려
한기가 드는 아침
 
그대의
시린 발끝에
따신 입김 한 모금
 
 
독백
 
 
은행나무 움 사이에 앉아 잠시 울고 갔다
 
딱새였을까
 
우두커니 그 소리를 들었다
 
누구나 하소연하고 싶은 세월은 있다
 
 
덩달이
 
 
나이 먹고 덩달아 우는 날이 많아졌다
이 땅의 슬픔이 보편화된 것인지
보편적 인간으로 내가 다시 사는 것인지
 
최근에는 남의 기쁨을 따라서도 잘 운다
언젠가 내가 슬펐을 적에, 기뼜을 적에
멀리서 울어준 모든 눈시울에... 경배
 
 
처서
 
 
배 지난 자리를
물이 다시 덮어주듯
 
그대 지난 자리에
여치가 와서 우네
 
울음은
저기 저 멀리
당신도 저 멀리
 
 
큰물*
 
 
해 떨어지다 팽나무 끝에 걸렸다
직박구리 쪼다 가고 바람이 핥다 간다
 
달 뜨다
우듬지에 걸렸다
반도 안 남았다
 
 
* 제주시 조천읍의 포구이름
 
 
등대지기
 
 
1
보이는 길과 가야 할 길이 다르듯
멀리 비추는 등대로는 터무니없다
내 길은 물길보다 더 험하고 가팔라
 
산에서도 어렴풋 등대가 보인다
언제부터였을까 산길에서보다
훤히 튄 물 위에서 더 자주 길을 잃게 된 것은
 
2
손만둣집에서 퐁당퐁당 저녁을 먹네
창 너머 길게 펴놓은 수평선이 찰랑거리네
골이 진 생계를 갈며 우물우물 배가 한 척
 
 
별꽃
 
 
 
솜틀집 안마당
볕 드는 동안
 
볕 아래 잠든 강아지
코 고는 소리
 
코끝에
팔랑거리는
명주나비 흰나비
 
 
철학하는 개
 
 
창살 안쪽 두 개의 눈알 박힌 짐승이 있다
눈을 감은 것은 보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뇌리에 날아와 박힌 두려움을 보자는 게다
 
마찬가지, 창살의 외부도 측은지심뿐
저 웅크린 짐승이 자신이라 하여도
실의의 본질을 찾아 골똘할 것이다
 
후미진 골목길 돌아 개장수도 멈추고
흥정이라도 되는 듯 잠시 밀고 잠시 당기다
신경 딱 끊어버리고 지퍼를 내릴 것이다
 
 
 맥박
 
 
세월이 가는 소리를 듣는다
아직은 따뜻하고 촉촉한 나라
부단한 침식작용이 불러올 벼랑을 안다
 
지는 잎이라든가 흔들리는 성신星辰
이런 것도 시간의 형식인 줄 알았는데
 
오류다
보이지않고
오직 들릴 뿐이다
 
 
 
피안
 
 
영하 13도, 바람이 묻는 것 같아
무사하냐고 살 만하냐고, 그립지는 않으냐고
아직은 괜찮은 것 같다고 나도 대답을 하지
 
여전히 궁금한 세상이 있기는 해도
제 발자국을 지우고 울부짖는 늑대처럼
가끔은 사람을 피해 숨고 싶은 날도 있다고
 
 
히말라야 산중 눈보라 속에서
벌거벗고 땀 흘린다는 수도승을 생각해
이 세상 악다구니 너머,  느낌 너머의 그 무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