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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광 시조집 <당신, 원본인가요>
등록일
2022.08.15 19:34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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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
2007년 <국제신문> 신촌문예 당선
시조집으로 <소리가 강을 건넌다> <바람이 사람같다>가 있음
현대시조 100인선으로 <시장 사람들>이 있음
부산시조 작품상,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나래시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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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저수지
본디 내 모습은 물 아래 묻어두고
누군가의 둑이 되어 살기로 작정했다
긴 가뭄 드러낸 바닥 주저앉기 전까진
가둬둔 게 아니었다 끌어안은 것이었다
가슴이 잠기도록 품속에 채운 나날
저 들녘 목말라할 땐 아낌없이 젖 물렸다
줄 것도 거둘 것도 이제 더는 없다는 듯
수위가 남긴 자국 지워버린 몸뚱아리
한 생을 마르도록 산 수많은 둑이 있다
유리창
볕 좋은 한낮이나 소쩍새 우는 한밤
홀로는 괜히 설워 창가에 서곤 했다
내 안이 바깥을 향해 말 걸고 싶던 시절
푸른 봄 창에 깃든 하늘에도 뭉클했고
옥외등 들뜬 불빛 덩달아 잠 설쳤다
비 내려 김이 서리면 손끝으로 그린 얼굴
빈 듯 가득 찬 듯 세상살이 얼비추고
따뜻이 감싸주다 싸늘하게 식은 표정
한순간 깨어지는 생 몸소 본도 보였다
창 너머 바라보던 아스라이 먼 훗날들
어느덧 다 흘러가 꿈인 듯 맴도는 밤
내 안이 할 말 있는지 창가로 불러낸다
축지
縮地
지팡이 쥔 어르신 오르막 올라간다
힘들여 떼는 걸음 눈빛으로 미는 동안
바람도 앞질러 가서 등 뒤를 떠받친다
다가서는 인기척에 그가 슬몃 돌아보고
고개 숙여 인사하자 웃는 낯 건네준다
가만히 동행이 되어 금세 넘는 고갯길
장마
달포를 주룩주룩 하늘이 울고 간다
땅은 또 질퍽질퍽 겨운 듯 젖어 있고
먼저 와 고인 설움이
접시 되어 받는 눈물
병든 몸 지친 마음
허덕이며 살아온 날
하늘도 북받쳐서 눈물 마구 쏟아낸다
다 울고 활짝 갠 얼굴
마주보세
사람아
볏단
온몸 탈탈 털려 낟알 다 내어주고
빈 몸 싹둑 썰려 겨우내 소 먹이고
들불로 피어날 기운 마른 짚에 잠재우고
말
뼈마디 갖춘 말은 돌만치 단단하다
제 앞에 펼쳐두면 어느새 벽이 되고
발아래 내려놓을 땐
노둣돌로 깔린다
속으로 모를 감춘 매끄러운 말 한마디
힘 실은 팔매질이 바람을 일으킨다
부딪혀 가장 아픈 곳
가슴 깊이 박힌다
사는 일 속속들이 어찌 다 얘기할까
온 마음 기우는 곳 말없는 말이 쌓여
제넘이 오가는 길목
돌탑 하나 솟는다
마늘을 까며
껍질을 벗겨내면 드러나는 뽀얀 속살
우리가 원하는 건 겉이 아닌 속이지만
수북이 쌓인 껍질도 제 할일 다한 은빛
손끝에 스며든 진 은근히 아려올 때
골목시장 한 모퉁이 쪼그려 마늘 까던
아낙네 몸이 밴 수고 알싸하게 떠오른다
한 접 마늘처럼 엮여 있는 하루하루
쭉정이만 이리저리 흩어놓은 시간 앞에
이 빈손 허무했겠다
마늘마저 안 깠으면
꿈틀
강줄기 띠를 두른 산기슭에 살고 싶네
나무랑 풀꽃이랑 산새 물새 사귀면서
밤이면 별밭에 나가 은하수 봇물 보리
내 발목 잡은 것은 도시가 준 또 다른 꿈
돈 벌어 빌딩 짓고 산도 통째 사겠노라
그 꿈이 한 사람 잡는 덫일 줄은 몰랐네
식은 재 묻은 가슴 불씨가 살아 꿈틀
꿈에도 길목 있어 아늑한 목이 있어
강줄기 띠를 두른 산 그곳으로 또 가자네
어깨
얼굴이 돋보일까 힘을 잔뜩 넣곤 했다
못쓸 만큼 무너지는 아픔도 치러봤고
무거워 축 처진 날엔 술에 기대 일어섰다
덜미를 노릴까봐 종종 뒤를 돌아봤다
누군가 메달 걸면 누구는 목매달고
사는 게 싸움터임을 부딪히며 익혔다
이제사 시나브로 힘을 뺄 줄도 안다
변한 듯 변치 않은 친구가 반가워서
양어깨 서로 나누며 지친 팔을 얹는다
밤낚시
잠 못 든 가을밤에 시집을 펼쳐든다
시인이 풀어놓은 시어들 입질하고
월척을 만나는 순간 가슴이 먼저 뛴다
한 편 시에 하룻밤을 바치는 날도 있다
지나온 뒤안길을 별자리에 걸어두고
밤이슬 밑밥 삼아서 시가 시를 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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