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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김화정시인 시집 < 그 말 이후> 등록일 2022.09.03 10:51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92

그 말 이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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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정

전남 화순에서 출생해 광주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8년 『시와 상상』신인상에 시가 당선되고, 2010년『영주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광주전남 시조시인협회, 광주문학아카데미, 보성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시집으로는 『맨드라미 꽃눈』 , 『물에서 크는 나무』가 있으며 첫 시조집으로 『그 말 이후』를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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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밭의 왈츠



그림자 차밭에 묶고
새처럼 바람을 탄다

한 소절 녹빛 햇살
붓질하는 입맞춤

사월의
소맷자락에
접신한 듯 퍼진다



접사


보일 듯 아련하다
고향집 뒤란에선

돌담을 치고 가는 풀꽃의 성장통

날 밝혀 눈 뜬 골무꽃 손에 맺힌 핏자국

저 홀로 이는 바람
서쪽에서 돌아올 때

생애를 길 더듬어 꿰매가는 바늘귀

보랏빛 손가락 들어 고깔 끈을 끊는다



허물벗기


허물 벗는 저 뱀, 울음이 없나 보다
빛깔이 변해가는
소리만 들릴 뿐

통점을
따라 내려와 투명해진 그물 옷

나도 어느 사이 허물을 벗고 있다
속속들이 파고들어
긴 자락 끌어와도

끝내는
지우고 덮고 퍼덕이다 남은 흔적




겨울 섬을 읽다


시간이 비껴간 섬
화석으로 갇혀 있다

쏟아지는 별빛은
그리움에 눌렸을까

세상은 멈추지 않아
술 취한 바다의 말

양말을 벗기자
서늘한 하얀 맨발

울며 떠난 꿈속에서
옷 한 벌 못 입히고

바다는 한 발 앞선다
붉은 덧신 노을 입고


내 안의 하피첩


햇차가 그리운 날 여유당에 들어선다
뜰의 매화 피지 않은 골 패인 마루 끝
햇살이 불을 지피며 자리를 권한다

뒤꼍에 참솔나무 그의 서책 펼치는데
입을 연 활자들 새떼처럼 날아간다
끝없이 잡으려 해도 닿을 수 없는 그곳

노을 진 내 치마에 핏빛 시를 쓰리라
발부리 촛불 들고 더듬어간 나의 초당
흙벽에 닳은 촉수로 실금 긋는 매화가지



경계에서



배꽃 핀 나무가 산역 마친 일꾼 같다
하늘 닿는 길 사이로 나비가 날아갔다
4월의 능선 위에는 노루귀꽃 환한 길

언덕바지 수풀더미 숨겨 놓은 틈 사이로
길 있다고 그 길 따라 걸어가신 아버지
한식날 다녀온 뒤로 옅은 잠 속 꽃 진다

흐르던 물소리가 무논에서 출렁일 때
못자리엔 햇살이 수직으로 일어선다
무형의 선을 넘듯이 사월 밖에 서 있다


그 말 이후


암세포 전이되며
폐에 물이 찼다는 소문
한동안 소식 없던 전화 속 그녀의 말
"나중에 연락할게요" 나는 또 몸을 떤다

집주인 도망치고
자취방 쫓겨난 날
보따리 짐 머리에 이고
자기 집에 앞서 가던
십 년 전
고향 친구가 했던 말
"나중에 연락할게"

얼른 나아 밥 먹고 카페도 가자더니
산 건지 죽은 건지 의문을 키우는 날
넋 없이 쳐진 두 손이 이마를 또 누른다



소녀상, 2010


그 겨울 미루나무 끝, 낮달이 걸려 있다
찬 하늘 잔별이 설움으로 돋아나
첫사랑 징용 길에는 싸락눈이 휘날린다

수레바퀴 멈춘 자리 단풍잎이 떨고 있다
골 깊은 주름 사이로 선홍빛 눈물방울
구부린 등뼈에 박혀 거꾸로만 도는 시계

경술년 그날 이후 노루발로 달린 길목
백년 만의 폭설로 억장이 무너지는데
쑥국새 날아간 자리, 외떨어진 옷고름

하늘은 찢어질 듯 처마 밑에 우박 쏟고
99엔의 찬 동전이 땅바닥에 튕겨질 때
메말라 옹이진 가슴 탕관 속에 끓고 있다



군자란


잡초들 뽑지 말고
그대로 두어요
군자는 이름 없는
풀꽃이 키운다나
화분 안
주인 어르신
나를 보며 당부한다

넙죽이 엎드린 것들
듣기라도 한 걸까
우후죽순 일어나
실가지마다 꽃 피운다
잊다가
돌이켜보니
더 싶어진 사랑인 듯



폭염


사드 배치 확정이란 긴급 속보 날아온다
달궈진 정보들이 자글자글 끓고 있다
빙그르 불똥이 튀자 삭발식에 늘어선 줄

뚜껑을 열고 보면 내 손만 데일까
거품을 걷어내면 잦아드는 냄비 국물
통일은 어디쯤 오나 씹을수록 짠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