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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황순희 시조집 <아가미가 그을었다> 등록일 2022.11.12 13:1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78




아가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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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희

부산에서 태어남
1983년 《현대시조》 지상백일장 장원
2018년 전국시조백일장 장원
2019년 《시조시학》 신인작품상
2022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
한국시조시인협회,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산시조시인협회, 부산여류시조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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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 행주

"아파트 분양합니다
이 번호로 연락 주세요"

핑크빛 행주 한 장
넙죽 받아 욱여넣고

역세권
바람자락에
올 풀리는 신기루

반지하 핥는 달빛
훔치고 또 훔친다

질컥한 전단지는
닿지 않을 깃발 같아

고단한
일상 말린다
별의 눈이 빠끔하다



이쯤에서

물방울 볼 부비며 작은 물길 키워왔다
돌부리에 발 헤지고 강섶에 쓸린 나날
엇박자 절룩거리며 모난 시간 갈고 있다

때로는 꼭 잡은 손 놓고도 싶었겠다
물낯이 잔잔해도 바람 없는 건 아니지
세월로 접은 주름살 굽이굽이 남실댄다

숨 고른 한 줌 햇살 물비늘로 반짝인다
살포시 내려앉은 나른한 그 하늘빛
쉼 없이 흘러온 강물
돌아본다
이쯤에서


아가미가 그을었다

전어 떼 찰방이자 은별이 몸을 떤다
돌아갈 바닷길은 하마나 아득하고
후덜덜 놀란 가슴에 아가미가 그을었다

5촉 등만 깜빡이는 봄이 아픈 춘자 이모
똬리 튼 파킨슨은 벽 오르는 담쟁이다
날마다 제자리걸음 길은 거기 멈췄고

수족관 유리벽에 길 잃은 지느러미
출구가 어디인지 돌아가도 막다른 곳
잘려진 손톱 조각으로 추락하는 별을 센다


어디쯤


나 무릎 꿇은 곳도 바닥이 아니었어

낮추고 엎드리고 그 정도면 오체투진데

찢어진 임시휴업안내 꺾인 등이 별을 본다

몇 번이나 지웠는지 짙은 눈썹 뭉개졌다

구겨진 소주팩이 명치끝에 얹혔는데

툭 털고 터져 나올 봄 어디쯤에 오고 있니


구두 수선공 조 씨

한 평 남짓 가건물에 몸 접고 갇힌 사내
틈새 빛 잇대어서 제 일생을 재단한다
불룩한 안경 너머로 깊은 주름 당기며

너덜난 뉴스들을 촘촘하게 박고 있다
뒤축만 갈아대다 제 무릎뼈 닳은 채로
이마 팬 몇 갈래 길에 기어오른 담쟁이

담장을 등에 지고 억척스레 살아낸 이력
비 오면 비 맞으며 흠뻑 젖음 되는 것을
세상에 가둬진 그가 남루하게 서 있다


모지랑섬*

오래된 정지 한 녘 모지라진 칼이 있지
나랑 함께 늙는 기라 물주름 진 해변 같은
수평선 목에 걸치고 물 밖으로 나온 여자

누구를 지우려고 그리 깎고 또 갈았나
닳은 손금 다독이며 비린 섬을 썰으셨나
흰동백 바람 든 어깨 포개진 날 욱신하다

* 전남 고흥군 소재.



달맞이꽃


희뿌연 어둑새벽 흩어진 달빛 조각
길섶에 주저앉아 막차를 기다리나
짓눌린 만월의 무게 어깻죽지 축 처져

허허한 마른 웃음 산허리에 내걸리고
곰삭은 가슴빛은 앞섶에 매달고서
노랗게 질린 얼굴로 이 하루를 접는다

쳇바퀴 같은 삶이 지치기도 하련마는
외줄 탄 아침은 소풍처럼 설레더라
기울면 또 찬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네


요양원 86호

새붉은 입술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부석부석 시든 날들 자근대며 밟히는데
꽃잎이 떨어진 자리 아름답긴 매한가지

날마다 짐을 싸서 집에 가는 꿈을 꾼다
한때는 꽃띠었지 분꽃같이 단아하던
시계는 멈춘 지 오래, 방치된 풍금처럼

허기진 햇살 한 줌 머리맡에 걸어둔다
하늘은 저리 깊어 눈자위도 움푹하다
바람은 삭은 이파리 쉴 새 없이 흔들고


바다, 하루를 갈무리하다


저 너른 이마로는 못 품을 게 없겠더라
머리에 하늘 인 채 깨끼발로 떨고 있다
하얀 깁 온몸으로 물고 드러누운 가막새

모래 한 줌 내뱉으며 바람도 서성인다
왔다가 쓸려 가는 물결마저 아쉬워서
가슴길 여닫는 것은 너뿐만이 아닌데

기어코 그 불덩이 삼키고 말았구나
버선발로 달려 나온 까지놀 저리 곱다
떠나도 빛나는 것들 붉은 파도 품는다


들개를 위한 변 


애초에 들개더냐 패대기친 산목숨들
바람결 풀씨처럼 이리저리 떠돌다가
기억은 뼈대만 남아 삐걱이는 그림자

사방을 빙 둘러친 한기조차 날이 섰다
하얀 별빛 언저리에 유기된 까만 도시
야산의 조뱅이꽃들 꼬리 말고 뒤척인다

사는 게 죽기보다 더 힘들다 하였던가
얼룩진 벤치에선 고요도 신음한다
오늘은 눈물이 맵다 훌쭉해진 하현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