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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최광모 시집 <디지털 장의사> 등록일 2022.12.23 20:0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54

최광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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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광모

경북 김천 출생
2017 중앙신인상 당선
2022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간지원수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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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장의사*


사막을 펼쳐놓고 Del를 두드리는 밤
날름거린 뱀의 흔적, 그 욕망을 문질러
낙타가 걸어간 먼 길
지문으로 읽는다

220V로 휘몰아치는 열풍 속에 숨겨져
웃음이 되지 못한 추억도 코두 찾아내
태양과 접속한 두 눈
연신 비벼 닦는다

뜨거운 모래 폭풍 멀리 날려 보내고
슬픔으로 빗금 진 가슴팍을 수습한 뒤
거칠게 저항한 과거
흔적 없이 지운다

*죽은 사람의 인터넷 기록을 정리하는 사람


유튜브


골목에 둥지를 튼 외로웠던 유목민들

아득해진 꿈들을 길 끝에 잇대어놓고

점점 더 견고해진다, 성벽이 높아진다

먹방으로 달랜 더부룩한 어둠 속에서

짧은 댓글을 달며 아군과 연대하지만

겨울은 낮은 포복으로 나를 포위한다

뜨거워진 손가락 오므렸다 펴는 한밤

웅크린 가로등이 어슴푸레 잠이 들면

조용히 날아온 달빛 그림자 들춰본다


벚나무 수목장


세상을 뜨는 새는 나무에게 가나 보다

울울창창 숲이 되어 울다가 울음 닦고

새하얀 달빛 속에서 절 한 채를 지었다

구름 같은 손길이 다가와 잠 깨운 봄

우글대는 어둠을 눈뜨게 한 햇살처럼

잊고 산 웃음소리로 화들짝 꽃 피운다

슬픔이 들킬까 봐 돌아누운 몸을 안고

우듬지에 새겨진 푸른 바람 문장으로

훨훨훨 날아올라서 나무가 된 텃새들


레코드판 위를 걷다


저곳은 아득해진 그리움의 안식처
깊고 넓게 환했던 보름달이 숨어있다
내 몸에 떠돌아다닌 말
음각하며 읽어낸

바람 많은 세상사 헛디딘 순간마다
납작하게 눌러진 그림자를 그러안고
새들이 어디선가 날아와
꿈결처럼 노래한다

되돌아갈 수 없는 적막한 길이지만
빛나는 뭇별 같은 기억을 더듬어가듯
두어 번 콜록거리다가
깊은 잠에 빠진다


목련꽃 식도염


웅크린 내 몸속엔 수 많은 밤이 있어

삼킬 수 없는 사랑 날마다 되읽더니

구름이 달빛을 지워 화들짝 핀 통증이여

명치끝에 걸린 슬픔 지그시 눌러봐도

말없이 왔다 가는 뾰족한 꿈이었지만

내일은 햇살 한 줌을 먹어 봐도 좋겠네


꽃양귀비 치매


엉킨 그녀 머리카락 천천히 빗겨 준다
체온을 낮춘 채로 바람 소리 품고 산
앙상한 그림자의 앞섶
울타리에 걸어놓고

오래전에 잊힌 꿈 거품 같은 생이지만
늘어진 생각들이 흘러가는 봄을 안고
솟구쳐 할 말을 하며
묵은 때를 벗긴다

날마다 늙어버린 거친 몸 일으켜 세워
어둠 꼭꼭 밟아서 화엄경을 외우듯
눈감고 몰래 들어앉아
반짝이는 아픈, 꽃


드라이플라워


무르팍 연골 틈에 안개가 머문 가을
어디선가 넌출넌출 푸른 강 흘러왔다
지난밤 똬리 튼 근심
그 미열을 지우고

불거진 물집들은 상처들의 봉분인가
엄마의 화원으로 날아든 새 한마리
오늘 또 주름살 쪼아
먼 길을 탈고한다


울다가 웃으면서 햇살이 된 풍경처럼
바람 든 뼈의 내력 더듬듯 매만지며
겨울이 밀려오기 전
젖은 말을 되삼킨


풍향계를 읽다


아물지 못한 상처 홍매화로 피어나면
웅웅거린 시간들 북쪽으로 날아간다
필사본 시린 꿈자리에
푸른 하늘 내려놓고

바람 없는 오늘은 당신만 생각할까
빛나는 나절가웃 아주 얇게 펼쳐서
어둠이 서성이는 골목을
비질하듯 지운다


눈 없는 생각들이 지문으로 돋아난 오후
쓸쓸한 그리움을 온몸으로 비비며
그대가 가리킨 바다를
봄이라고 읽는다


물건방조어부림


병어 떼가 찾아와 은색으로 변한 바다

잘박잘박한 파도 소리에 마음 놓고 반짝이는 햇살
같이 우거진 숲에서 선명하게 부풀어 오른 하늘같이
물미해안 몽돌 속에 들어앉은 수평선같이

살포시 날아든 몇 마리 새
당산목에 잠긴다


섭지코지처럼


무름한 슬픔까지
다 품은 바다를 보며

주름 잡힌 흉터를
두 손으로 문지르고

여자는 어긋난 만남
파도 위에 던진다

먼 길을 허리품에
다시 감고 되감아서

가벼워진 그림자
날려 보낸 그다음

여자는 아픈 겨울을
뜻도 없이 지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