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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이승현 시조시인 작품방 등록일 2016.01.31 15:09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014

=======================================================차  례============================================

귀항/ 설날아침/ 장마당 역무원/ 달팽이/ 바다/ 늦가을/ 달빛사랑방/ 열꽃/ 현기증/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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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항

 

 

깍지 낀 어둠 헤치며 항구로 돌아가는 배

 

헐거운 방향타로 닻 내릴 길을 묻는다

 

날 세운 파도 재우며, 바람 모두 껴안으며....

 

섬을 스칠 때마다 고동소리 건네봐도

 

깜박이던 등대마저 메아리조차 없어

 

오늘도 잠들지 못한 노숙의 별만 본다

 

울컥 이던 뱃머리로 내항의 문을 열면

 

언제나 내편의 아내 선창가 서성이다가

 

비어서 퀭한 어창에 달빛 가득 부어 놓는다

 

 

설날아침

 

 

뒷마당 대숲소리 삼삼히 들려오는

지하철 앞쪽 벽에 고향집 앉아 있다

다 낡은 신발 한 켤레 신발코를 쭉 빼고...

 

듭벙 속 저녁노을 물수제비로 덧칠하며

고샅길 우렁우렁 뛰놀던 옛 친구들

지금쯤 애들 손잡고 정자나무 돌겠지

 

전철이 도착하자 고향집이 사라진다

귀향 못한 사람들 우르르 밀려들고

그 틈새 나 또한 서서 하루를 셈하고 있다

 

 

장마당 역무원

 

 

좌판도 낡은 천막도 한기에 주눅이 들고

눈빛도 외면하고 가는 금호동 간이시장

얼붙은 배추 몇 포기 찬바람에 오금이 전다

 

꽃 같은 일등고객 대형마트가 모셔가고

짭짤한 단골손님 할인카드로 환승을 하고

장마당 지친 의자에 홀로 조는 할아버지

 

재개발 조합사무실 돋음새임 간판 앞에

테마열차 세워놓고 한바탕 난전 펴는 날

손금에 동그라미 치며 오늘도 깃발을 든다

 

 

달팽이

 

 

제 몸보다 몇 배 큰

바랑을 짊어지고

 

한 줄기 실날같은 풀잎을 딛고 서서

 

하늘을

휘저어보는

가느다란 더듬이

 

 

바다

 

 

세상 모든 말들이

터질듯 밀려들어도

 

한 되만 넘쳐나도 수증기로 비우는 가슴

 

숙연히

잦아들다 보면

끝내 닿을까, 저 평형

 

 

늦가을

 

 

여름내 뙤약볕에 목젖이 타들어가도

발가락 마디마디 옹이를 박아가며

천길 속 바위틈새에 길핏줄 뻗어 내렸다

 

세상을 물들일 것 같던 앞산도 물기 빼고

순 죽은 가을볕에 저리 몸 말리는 일은

삭신을 옥죄여놓는 겨울나기 위함인가

 

밭은 숨 쉬던 강물도 발꿈치 모으는 상강霜降

이 몸은 어느 갈피쯤 등짐을 풀어놓을까

갈매 옷 벗어놓고서 가늠해 본다, 저 길 끝...

 

 

달빛사랑방

 

 

홍시가 손짓하는 고향집 가는 날은

달보다 더 정겨운 마음들을 안습니다

벼이삭 가을볕 딛고 내친걸음 놓습니다

 

담 없는 넓은 마당 펼쳐놓은 멍석위에

하나 둘 모여든 벗 둠벙 속 미꾸립니다

간간히 퍼지는 웃음 흥을 더욱 돋습니다

 

모닥불 자기 전에 밤톨 두엇 더 얹으면

도시에서 찌든 땀내 슬며시 물러 나앉고

모처럼 연시빛 달덩이 가슴에 품습니다

 

 

열꽃

 

 

그대 눈에 가득한 이야기에 빠질까

 

꽃봉오리 벙그는 그 입술에 빠질까

 

온밤을

하얗게 태울

심지 하나 세웁니다

 

가슴 섶 파고드는 목소리에 빠질까

 

거세게 이는 열꽃에 눈동자 이글거리다

 

온 밤을

하얗게 밝힐

질화로 속 불입니다

 

 

현기증

 

 

잘 가던

나룻배가

 

감자기 멈춰 섰다

 

어둠의 그림자가 검문을 하고 있다

 

때로는

내가 선택한 길도

 

바람 앞에

표주박

 

 

 

 

걸어온 길이만큼 문틀에 문양 새기는

올 때 열고 온 문을 다시 열려합니다

어둠이 늘 서려있어 다가가기 꺼리던 곳

 

바람의 여울보다 잰 걸음걸이를 하며

나무의 지문보다 촘촘히 칸을 짜고

더러는 깨진 조각으로 잇댄 날도 있습니다

 

문틈에 낀 먼지마저 날아갈 시간인지

덧대 이은 조각들이 제풀에 튕겨지고

녹 슬은 자물쇠 뭉치는 기지개 펴려합니다

 

아직은 아니기에, 그리 되선 아니 되기에

새기다만 남은 날들에 부레풀 듬뿍 부어

핏줄 튼 어머니 손에다 꼭 쥐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