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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숙희 시인 시집 <둥근 것의 힘>
등록일
2022.04.14 22:4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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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희 시인
경기도 용인에서 태어나 1998년 <시조생활>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꽃, 네 곁에서>, <엉겅퀴 독법>(시조시인 100인선, 고요아침)이 있으며, 정형시학 작품상,
시천문학상. (사)한국시조협회 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은하수숲유치원을 운영하며, 유아교육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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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원고
어디에도 길은 없다,벽과 벽 사이에는
수천 길 크레바스 갇혀버린 열 손가락
한 뼘도 나가지 못하는 허공 속에 뜬 감옥
외등
지난 것 다 내주고 물기 마른 옥수숫대
오래된 폐가처럼 삭은 관절 무너지고
찬바람 허리 휘감는 요양병원 저 불빛
둥근 것의 힘
울퉁불퉁 바윗돌이 몽돌이 될 쯤이면
바다는 뜬눈으로 제 몸을 부렸겠지
밤이면 달비도 내려와 살뜰히 핥아주고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수만 번씩
엎어지던 불협화음 쓸리고 쓸어가며
부딪쳐 으깨어진 채 서로를 품어내고
새 아침 햇귀 아래 어깨를 기대느라
자갈자갈 모여 앉은 얼굴들 보아라
모난 곳 하나 없구나, 둥글게 뭉쳤구나
반그늘
잔금 간 항아리 같은 옆얼굴 힐끗 본다
삼십 도로 기울어져 왼쪽으로 밀려난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불협화음 끊임없다
하루 해 얹힌 등을 벌레처럼 웅크리고
내 천 자 미간에 긋고 깊은 잠 더듬을 때
한 남자 노등의 반이 내 쪽으로 넘어온다
내어준 반그늘이 무에 그리 대수인가
한때는 까칠했던 내 나이도 순해져서
어깨에 작은 불꽃이 따스하게 지펴 든다
안면도 일기
쉼 없이 밀려가고 밀려오는 구름 일가
사이사이 내비치는 햇살 줄기 조붓하다
추억은 푸른 연락선 머리 위로 길을 내고
언약으로 남아 있는 겹겹 접힌 편지 갈피
눈 감고 떠올리는 그날의 이야기가
내 안의 감각을 깨워 촉수마다 등불 켠다
깊을 만큼 깊어져서 가을은 말이 없고
들녘을 헤엄치는 잔바람 지느러미
빌딩 숲 멀어질수록 너는 더욱 환하다
치아 파절
욱씬욱씬 일러 준다 다친 게 사실이라고
눈물 찔끔, 콧물 찔끔 끝내 도진 식도염에
놓친 죄 너무 미안해 슬픔 꾹꾹 누른다
이바구와 이바구 사이
잘 빚은 도자기 속은 깡그리 쑥대밭이다
윤기 나던 그 거짓말 술술술 술이 되어
창자에 박힌 돌까지 죄다 쏟는 혹등고래?
ㅋㅋㅋ토악질하다 ㄹㄹㄹ 노래하다
ㅍㅍㅍ 주먹질에 ㅂㅂㅂ 흔들거리다
견고한 어느 틈에서 금이 가고 있었는지
지킬과 하이드 씨 두 생각 한 몸인데
만부당한 어불성설 입에 발린 그 엉너리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가도 가도 안개 속을
어머니 잠언
'내려다보고 살아라' 입버른 옛 말씀을
입술 한껏 깨물면서 되새기고 오르던 길
아득한 그 절벽 앞에 서성이네, 눈을 드네
등짐에 가려, 가려 겨우 앞만 보이던 날
방아깨비 풀무치도 이렇게나 예쁠 수가!
굽은 산 절반을 넘어 그 말씀 다시 듣네
나이를 헤다
내 나이 불혹일 때 하염없이 미안했지
지천명 그맘때엔 쉰밥 보듯 화가 났지
어쩌다
이순의 나이,
외려 귀가 어지럽네
고등어 한 손
나무 궤짝 귀퉁이에 한 몸으로 포개져서
꽁꽁 얼어버린, 누구냐 너희들은
한겨울 동생을 안고 선잠이 든 꽃제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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