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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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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임영석 시인 시집 <입꼬리 방정식> 등록일 2022.06.09 21:1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45


임영석.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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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석

충남 금산에서 태어나 1985년 『현대시조』로 등단하였다. 시집 『이중창문을 굳게 닫고』, 『사랑엽서』, 『나는 빈 항아리를 보면 소금을 담아 놓고 싶다』, 『어둠을 묶어야 별이 뜬다』, 『고래 발자국』, 『받아쓰기』, 『나, 이제부터 삐딱하게 살기로 했다』가 있다. 시조집 『배경』, 『초승달을 보며』, 『꽃불』, 『참맛』, 시조선집 『고양이 걸음』, 시론집 『미래를 개척하는 시인』과 산문집 『나는 지금 지구별을 타고 태양을 한 바퀴 돌고 있다』 등이 있다. 제1회 시조세계문학상, 천상병귀천문학상, 제38회 강원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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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첩


반으로 접혀 있는 수첩을 펼 때마다
빼곡히 적어놓은 가슴속의 기억들이
삶의 향 가득 물고서 나비처럼 퍼덕인다

내 허물을 덮기 위해 기록된 흔적들이
얼룩무늬 나비처럼 회한을 품고 품어
어제를 폈다 접으며 두 날개를 움직인다

씨줄 같은 날에는 밑줄을 그어놓고
날줄 같은 날에는 둥그런 원을 그려
삶이란 꽃 한 송이를 찾아가고 있었다

이젠 나도 내 손톱에 더듬이를 길게 늘여
얼룩무늬 나비처럼 삶의 꽃을 읽어내어
너에게 다가갈 때는 내 영혼을 다 주리라


세월 앞에서


내 몸도 저 낫처럼 구부러져 녹이 슬면
잡초 하나 못 베고서 줄다리기할 것인데;
그때는 두려움 없이 불에 녹여 두드려라

불속에 달구어서 두드리지 않는다면
내 몸의 금속성은 붉은 녹이 달라붙어
세월의 변덕에 그만 와르르르 무너지리라


별을 보며


침묵을 기둥 삼아 집 한 채 짓고 싶다
아무리 많은 사람 망명을 해와도
침묵의 기둥 하나면 다 수용하는 그런 집

살인자도 숨어들고 강간범도 숨어들어
남은 생 침묵으로 벌 받으며 살다 보면
꽃처럼 말 한마디를 배워가는 그런 집

밤하는 어둠을 보면 침묵의 기둥 같다
수많은 영혼들이 어둠 속에 매달려서
무엇을 고백하는데 왜 내가 울컥할까


다짐


이제는 내 스스로가
앞 못 보는 맹인처럼

더듬더듬 더듬어서
갈 길이 따로 있다

달 가고 해가 가듯이
그런 길을 가야겠다


비행기 소리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어보면
반짝이는 불빛보다 한참 뒤에 따라간다
울 엄마 내가 떼써도 앞서가는 것처럼,


서로서로


산에 사는 나무들은 힘드니까 밀어주고
들에 사는 나무들은 외로우니까 팔 벌린다
그렇게 토닥거리며 서로서로 함께 산다

산에서는 메아리도 외로워서 답을 하고
들에서는 전봇대도 줄을 서서 걸어간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외로움을 못 이긴다


하늘


하늘은 늘 빈 몸이다
제 것 하나 안 갖는다

떠돌고 떠돌아도
언제나 감싸준다

어둠도
하늘에서는
꽃 피우는 나무다


칼바람


폐허가 된 고향 집은
칼바람을 하나 물고
풋풋했던 어제 일을
하나씩 베어낸다

그 자리,
거미줄 쳐서
그리움이 다 걸린다

폐허가 된 고향 집은
사금파리 눈빛들만
시린 눈을 붉게 뜨고
칼바람과 맞서는데

그 눈빛,
안쓰러운지
함박눈이 덮어준다


찰랑찰랑


살구 향이 찰랑찰랑 담겨 있는 살구꽃,
모과 향이 찰랑찰랑 담겨 있는 모과꽃,
봄마다 꽃 그릇 들고 햇살을 퍼 담는다

봄바람이 찰랑찰랑 보리밭을 지나가고
물너울이 찰랑찰랑 물 위를 지나가면
가슴을 꽁꽁 묶었던 대추 잎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