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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종문 시인 시집 <아버지의 자전거>
등록일
2022.06.12 14:3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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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문
1960년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태어나 1986년 사화집 「지금 그리고 여기」를 통해 작품활동 시작했다.
시조집 「오월은 섹스를 한다」, 「지상의 한 집에 들다」, 6인 시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6인 시집 「갈잎 흔드는 여섯 악장 칸타타」, 가사시집 「명옥헌원림 별사」가 있으며, 사화집 「어둠은 어둠만이 아니다」 외 5권, 그 외로 「이야기 고사성어」 전3권(1권 처세편, 2권 교양편, 3권 애정편), 「시조로 읽는 삶의 풍경들」 외 등이 있다. 엮은 책으로 「현대시조자선대표작집」, 「교과서와 함께 읽는 시조」, 「시조의 봄여름가을겨울 이야기」 등이 있다.
중앙시조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한국시조대상을 수상했으며, 오늘의시조시인회의 부의장, (사)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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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곡을 건너며
아찔만 벼랑길을 출렁이며 걸어온 길
모퉁이로 떨어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걷는 자
그 고요 속에
풍덩 하고 빠진다
날 세워 반항하는 참담한 입 다물게 할
높은 산 골도 깊고 홀로 높지 않다는 말
이제 와
하찮은 겁박
왜 입에다 거는 건가
물이 만지고 깎아 새겨놓은 저 흔적들
불끈 쥔 늙은 시간을 살짝 들여다본다
허공에
매달린 협곡
또 바람이 차오른다
아버지의 자전거
어떤 사내라도 품을 수 없는 자존심이
몇 번 휑한 바람에 쓰러지고 부러졌다
그림자 더 짧아진 길
아버지가 가고 있다
화려한 날 다 보내고 뿌리를 갉아 먹는
검버섯 피어나는 서책을 싣고 오나
자전거 그 바큇살에 햇살들로 반짝였다
거룩한 이름 석 자 깊은 고요로 남은
마음에 접지 못한 길 환하게 놓여 있다
풍경 속 고집스러운
아버지가 오고 있다
호미곶 봄빛
저 바다 다 가졌어도
땅 한 평 못 가진 때
긍구한 호미곶 봄빛
필사하는 상생의 손
일몰 후
해협 건너는
망명일지 쓰고 있다
콩밭 별장
상기도 좋은 때는 아직 오지 않았다고
오랜 날 강물처럼 출렁이며 산 사람아
빈 콩밭 한 대목 사설
그 완창을 읽는다
풀숲에 핀 산꿩다리 더 짙어진 그늘일까
해질물 낙콩을 줍는 산꿩의 마음일까
아홉 살 와락 밀려온 콩깍지 속 사랑일까
마당 안 어린 고요 바람으로 메워지고
고맙다 말 못한 채 숲 되고 나무 되어
새소리 방울을 다는
풍경들로 환해진다
푸코를 읽는 밤
그 남자 밤을 잊고 푸코*를 만나는 날
안경 쓴 이론들이 채집하는 담론 두고
행간에 살아 날뛰는
쑥대머리 깨알 글자
세상과 이어 놓은 불면의 저 편집증
일생이 먹먹하다며 마음이 헛헛했다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말 걸어온 그대 광기
순백의 이성 위에 무슨 말뜻 심고 싶어
황홀한 숲이 되어 평생 피운 말의 꽃들
난해한 바람의 필체
봄빛 문법 닮아 있다
*프랑스 철학자.
봄밤, 천둥소리
저 끝없는
맘명길에
터트리는 벼락의 말
하르르
꽃 지는 밤
다 받아 적을 수 없어
암전된
완벽한 하늘
면도칼로 찢고 있다
여우비 오는 날
저 앞산
저 들녘을
마실 나온 여우비가
외딴집
양철지붕
손님처럼 다녀간 뒤
지청구
은유의 해가
우두망찰 벌을 선다
쥘부채를 들고
사랑할 때 너를 찾아 한 생을 몸 맡기고
미워할 때 너를 잊어 한 생을 버림받은
숱한 밤 혼자의 시간
모란꽃을 닮았다
여름 끝 남은 것으 처연한 가을의 말
겁 없이 배반하고 살 떨리게 배반당한
찬찬한 사람을 잃은
그리움을 지워갔다
자작나무에게
마침내 독백처럼 타닥 탁 소리를 낸다
껍질의 잔금들이 내 몸까지 그어진다
얼마나 관능적인가
일가 이룬 문장이다
엄마의 검정고무신
필생의 고단한 발이 신발에 묻어 있다
열아홉 고운 색시 간 데 없고 백발이라
다 닳은 무릎 속에는
바람들이 빼곡하다
좋은 날 다 보내고 뜬세상 관통하는
장식된 군더더기 하나 없느 수사의 길
궁핍한 겉옷을 벗고
깨꽃으로 피어난다
한 켤레 검정고무신 사람이 그리운 날
매 순간 간명하게 생략되는 어머니 땅
투명한 생의 품사가
방점 찍고 길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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