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실
제주시 이호이동 출생, 2010년 시조시학 가을호 신인상, 2009년 중앙시조백일장 차하
----------------------------------
첫눈
옹이처럼 박혀버린 오래 전 너와 내가
일상에 찌든 날들 접어둔 채 살아가도
또 한 해 첫눈이 오면 가슴부터 젖는다
강아지풀
바람과 겁도 없이 온몸으로 맞장 뜬다
알리의 잽마저도 맞지 않을 흔들림
사는 일 그 바람 타듯 절명의 순간이다
낙타
내려놓으면 가벼운 삶인 줄 알면서도
덜어내지 못한 마음 하루치를 또 살아
날마다 내 안의 낙타 사막 속을 걷는다
산굼부리에 바다가 있다
가을 햇살 무르익어 억새꽃에 스며들면
바람이 져 나르는 무한대 은갈치떼
분화구 가두리망에 내 사랑도 반짝인다
아버지의 커피믹스
언제부턴가 외국상표 커피전문점 늘었다
차 한 잔 오천 원도 개의치 않는 사람들
아버진 잔치집 커피로 하루를 열었다
커피 하나, 프림 둘, 설탕 둘, 황금비율
꿀물 타서 드시듯 밥보다 먼저 손이 가던
노동의 아버지 생에 검게 타는 이 향기
설움도 사르르 녹아 위안 받던 아버지
그래선지 내 기호도 황금비율 꼭 닮아서
차 한 잔 붉게 저어서 함께 하는 한나절
홍시 한 알
직박구리 쪼다 남은 낮달이 애처롭다
감나무 가지 사이로 더 짙어진 허기
할머닌 숨겨두었던
홍시 한 알 내민다
그 겨울 동백꽃
산으로 숨으라는 할머니 말 듣고
이유도 모른 채 산으로 오른 삼촌
소리도 멈춰버렸나 허공 속의 아우성
배고픈 까치발로 서성이던 집 근처
칼바람 휘몰이로 순간 나타난 총든 순사
숨어라 급한 외침에 뛰어든 고팡속
얼음땡 아이들 놀이 풀리지 않은 주문
탕 탕 탕 총소리에 들숨으로 멈췄다가
동백꽃 붉은 이야기 날숨으로 툭, 지고
찔레나무
온 들녘 내려앉은 흰연분홍 꽃송이
녹음보다 더 짙게 달아오른 향기들이
가을엔 빨간 별되어 밤하늘에 박힌다
오도롱 연가
달빛 취해
별 세다가
풋감 들던 곳이다
그 파편들
귤꽃에
내려앉은 올레길
늦은 밤
마실가자며
따라나선
그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