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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일
제주 출신
2011년 <시조시학> 등단
시집 지느러미 남자,
한ㄱ구시조시인협회,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제주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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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택배함
정 줄 데 없으면 내게 두고 가시라
미움 전할 데 없어도 내게 놓고 가시라
그 사람 부재 시에는 두말 말고 맡기시라
내게 잠깐 왔다가도 슬퍼하지 않으리라
철커덕, 도로 내줘도 아파하지 않으리라
딱하나, 너 아주 없다면 나 많이 힘들리랴
출륙금지령
17세기 초 조선으로 자가격리 반송한다
제주말이 서울말과 이토록 다르게 된
역사도 거리두기 하는 2백 년 강제격리
진상하는 자 말고는 육지 땅을 밟지 마라
팬데믹 코로나다 집 밖에 나오지 마라
때 아닌 2주간 고립에 소환되는 출륙금지
탁상달력
일 년짜리
삶을 살아도
너 가히 당당하다
힘겨웠던 서른 날을
다리 벌려 딱 버티며
긴 머리
쓸어 넘기듯
젖혀버리는
저 평정심
영주산 분화구
가슴이 북받쳐도 좀 참지 그랬어
깊고 싶은 마음속 뜨거운 응어리가
솟구쳐 타오른 그곳도 언제 그랬냐는 듯
누구나 한 번쯤 끓어오른 적 있으리
나 또한 용암 되어 흘러온 숱한 날을
차가운 동굴로 살았고 계곡으로 살았어
절제의 미
고샅길
철조망 안
말들이 머뭇댄다
오름을 내달리던
고려의
오랜 본능
검객이
칼집에 든 검을
빼다
도로
넣듯이
전동드릴
또다시 리모델링 공사 간혈적인 드릴 소리
천장 다 뜯어내고 바닥도 새로 깔고
누군들 초췌해진 몸 뒤엎은 적 없었으랴
그렇게 뚫고 빼고 메우고 떼어내고
한 껍질만 벗겨내도 새살이 돋으려면
살얼음 건너가는 일 숱하게 많다는데
정글 같은 도시에서 계곡 같은 이 땅에서
한 마리 들짐승이 드르륵드르륵 울어댄다
한밤중 코 고는 소리, 남자도 그렇게 운다
벽돌
깎아지른 생이었다
무심한
기다림은
홀로이
버텼다면
빛날 일도 없었을
번듯함
그 하나 바라보며
생을 괴던
몸부림
허리띠
이제, 낡고 해졌다고
쉽사리 버릴 순 없어
는적는적 볼품없이
흘러내리던 나를
한사코
까지 낀 채로
붙들어 준 너였잖아
느낌표!
둥그런
세상 위에
발조차 못 디뎌도
굽실거린 적
한번 없는
번듯함이
난 좋아
불안한
역삼각형 삶 속
느낌 있는
너, 참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