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은
1958년 서울출생 1979년 <만해백일장 장원>,1979년 KBS 문공부 주최 <전국민조시대회> 장원 수상 등단 시집 <내가 그린 풍경> ,< 시간의 물그늘> , <길은 사막속이다> 등 다수 이영도 시조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오늘의시조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백수문학상 수상 -------------------------
말을 삼키다
서해 궁평항구 무슨 속 끓이기에
갯벌 다 드러낸 채 구멍숭숭 뜷어놓나
어스름 들쳐 업느라 펑퍼짐한 해의 등 쪽
눈길 한번 줄 때마다 서너 뼘씩 빠지는 물
건너편 저 솔밭은 울음 같은 바람소리
기침만 터질듯 말듯 목젖 어디 가랑댄다
헤아려 거두느라 눈치만 빤한 노을
귀엣말 새겨듣다 내 할 말 또 놓치네
너, 라는 옥살이에도 비전향 장기수, 나
첫, 이라는 쓸쓸이 내게도 왔다
학습 없이 갖게되는 처음의 감각이란
우리를 달뜨게 하고 한없이 불안케 한다
쓸쓸히 간절해지는 나이를 알게 한다
저물어도 환한 -노스텔지어*
어둠 잠긴 눈동자에 흰 구름 두덩이가
울음을 참고 있다 밖은 비가 스치는데
와인잔 불빛을 흔들며 나붓이 오는 것아
벼린 마음 없었어도 순간에 곷은 지고
텅 빈 탁자 한쪽 모서리를 비껴가며
한 사람 눈물의 온기로 지워져 가는 것아
*56x56cm 캔버스에 오일, 루드밀러코럴(아일랜드, 2015)
회고록 -리스본행 야간열차*
독재가 현실이면 혁명은 의무라던 열혈청년 그 얼굴은 아직 도 스무살이다 금남로 최루탄 안개가 화면 가득 번져들 때
일탈의 시간 속에 자구 발이 묶이고 첫 마음 불길마저 잦아 들어 주름진 날 혼신을 불어넣어 준 카네이션, 무혈의 시
*영화제목. 19780년대 독재정권에 맞선 포르투갈 시민혁명을 다뤘다
노란리본
까르르 볼우물에 봄꿈 아직 한창일 때
그 어둠 첫 문턱에 초록 발 딛는 것을
바람이 만신창이로 우우, 울며 보았어
죽어도 죽지 않아 날마다 넌 눈을 뜨지
물거품 그 소름을 물꽃으로 피워 물고
해마다 사월이 오면 늑골 깊이 펄럭이지
그랜드 카날*
이른 아침 산책로 옆 동그랗개 물이 뜬 채 부리에 깃을 묻고 단잠에 빠진 백조
제 몸이 전부였구나 몇 채 집이 떠 있다
아직도 줄을 대느라 여념 없는 저 물길도 나직한 가장자리는 쉬엄쉬엄 머무는가
정지된 화면만 같다 여기, 지금 가을날
옛집
금방 있던 사람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걷어낸 그림자의 적막이 완강했다 작별은 범점치 못할 형용사를 거느렸다
비 오고 바람불다 한 생이 저물었다 무겁게 걸어왔던 헌 신발이 가벼웠다 다시는 질척임 없을 질척임만 떠다녔다
체감
돌맞이 손녀딸이 품속에 안겨들어 따습고 말랑하게 심장 한 줌 뛰는 동안
무언가 쑥, 빠져나갔다 실마리가 풀렸다
꽃집에서
봄이든 여름이든 꽃집은 늘 꽃집이다
꽃들은 어르면서 말문을 트는 동안
버티는 내 곁가지를 잘라내고 있는 동안
세상일에 부대끼며 쓸쓸하고 격해질 때
슬그머니 눈치보는 꽃가위가 저만치
단번에 휘두를 뜻은 없다는 듯 저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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