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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1997년 경남신문 신춘문에 시조당선, <시조문학> 천료
시조집 <내 마음의 낙서>, 현대시조 100인선 <슬픔의 안쪽>
경남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수상 등
<서정과 현실>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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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리목
연분홍 바람 소리
시간을
멈춰놓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뻐꾹새
풀어놓고
산그늘
앞섶 여미는
낙화암 위
노부부
그리움은 자라서
마른 허기 같은 그리움은 자라서
굽은 길 적막 아래 붉게 핀 저녁 식탁
산그늘 내려와 앉아 곷등 하나 걸립니다
어깨 너머 낮은 돌담 그리움은 자라서
바람에 몸 흔들며 늙어가는 감나무
돋을볕 가슴에 새기며 나뭇잎을 떨굽니다
고봉밥
머리 맛댄 알밤 세 톨
나뭇잎에 덮여 있다
늦은 밤 아랙목에 묻어둔 고봉밥이다
일 나간
아버지 위해
다람쥐도 눈을 감고
차용증
갚아도 갚을 길 없는 이자만 늘어나고
꼬인 밤 펴겠다며 다림질하던 아버지
굴곡진 주름의 문장
끝내 펴지 못했습니다
죽은 부모 팔아서 눈물 뿌려 시 쓰고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한 경작 마당 쌓인 부채
설움은 칼바람 되어
내 빰을 후려칩니다
바람의 부족部族 1
- 먼나무
마른 잎 흔들며 가는
바람의 길을 따라
멀쩍이 꽃핀 그대여
서럽게 울고 싶은 날
가지 끝 새 한 마리도 종일토록 울다 갔다
바람의 부족部族 2
-달
마당 한 켠 뒷물하는 달 엉덩이 환하다
물방울 튕겨가며 수런대는 호수의 밤
피 묻은 달거리 처녀
속옷도 헹구고 있다
바람의 부족部族 3
-별
까마득한 어둠에도
길을 잃지 않는 것은
수없이 헤매다가
다시 찾아 가는 것은
막막한
그 높이에서
비추는 시여
노래여
창원중앙역
용동 산 32번지 고기떼 다 어디 갔나
첫사랑 건져 올린 역사 깊은 저수지에서
그 너른 역사驛舍 지어지고
그 사람은
지워지고
가네 가네
기차 가네
사랑이 울며 가네
끓는 피 뼈를 묻고
가슴 위로 달리네
떠날 자 떠나게 하라
호명하는
중앙역
등꽃
약속처럼 너는 와서 등불을 달았구나
휘날리는 저 꽃잎 바람처럼 너는 와서
파르르 매달린 등에 떨리는 손, 환해라
불 밝힌 연등 송이 줄레줄레 소망 걸고
길 속에 길을 찾아 용케도 피운 그리움
고와라, 상처 없는 꽃 세상 어디에 있으랴
꽃잎 경전
불 지핀 땅 보풀보풀 채장을 펼칩니다
동안거에 들었던 여울물이 눈을 뜨고
초유가 흐르는 뿌리
새파란 움이 돋아납니다
어느새 꽃불입니다
귀밑까지 번진 상처
옥탑방 끝에서도 쿨럭이며 피운 화덕
경전을 외는 벚나무
보시가 한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