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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장은수 시인 시집 엿보기 <풀밭 위의 식사> 등록일 2020.09.24 11:23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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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은수

충북 보은 출생

2012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집 <서울 카라반>, 시조선집 <새의 지문>

시집 <전봇대가 일어서다>, <고추의 계절>

천강문학상 시조부문 수상, 한국동서문학 작품상 수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수상

계간 <정형시학>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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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사막 하나 펼친다

중세의 시간 너머

고비의 먼지인 듯

사하라 신기루인 듯

나는 또 카라반이 되어

시를 찾아 나선다

 

 

여름밤

 

 

 

한여름 매미울음에 어둠이 펄럭인다

 

낮도 그만 모자라서 이슥토록 울고 있다

 

목이 쉰 어떤 생애가

 

하나를 넘고 있다

 

 

 

일어서는 바다

 

 

 

1.

수만 구멍 숨을 죽인 와온 해변 갈대밭 끝

짱뚱어 노려보던 흰 구름도 흘러간 뒤

사뿐히 노랑부리저어새 갯벌에 진을 친디

 

2.

끓는 노을 한 입 물고 삿자리 누운 아버지

어장에 든 새를 쫓듯 훠이 훠이 손 흔들다

마른 혀 연방 축이며 먼 허공만 응시한다

 

3.

쓰나미 또 몰려오나, 허기진 섬과 섬에

날선 칼끝 곧추세워 노려보는 저 왜구들

왜바람 푸른 촉 앞에 난바다가 일어선다

 

 

 

흰, 연

 

 

 

붉덩물에 밭을 묻고 하늘을 우려른다

골다공증 깊어가도 곧추세운 굽은 허리

이따금 소소리바람 꽃대 밀어 올리고

 

펄 속에 잠긴 유년 피고 지느 한세월도

선득한 눈빛 두엇 잎사귀에 풀어놓고

남루의 젖은 땅마저 향기 흠뻑 적신다

 

가르마 선을 따라 햇살이 눈부실 때

흰 꽃잎 가만 보면 가부좌한 내 어머니

당신은 그 빛 속에서 염화시중 벌고 있다

 

 

 

 

 

 

한 뼘 담장 밑에 장미꽃을 심어놓고

 

가끔씩 물을 주며 몇 달을 다독인다

 

장미가 웃는다는 말 은유인줄 알았다

 

이파리 생채기에도 잠 못 들고 뒤척여도

 

꽃이 말을 한다는 것 믿지 않고 살았는데

 

이제는 화사한 낯을 내 어깨에 기댄다

 

혼자 입술 깨물며 울기까지 한다는 건

 

은밀한 관계인가, 영문 모를 연인이여

 

더 이상 감당키 어려워

 

못들은 척!

 

모르는 척!

 

 

 

꽃섬 목각

 

 

차가운 물안개가 밀려왔다 밀려갈 때

날선 칼끝 에인 자리 여철이 뚜렷하다

파도가 피운 꽃송이 뚝뚝 지는 동백섬에

 

새벽까지 홀로 앉은 포구의 낡은 벤치

어둑서니 눈길마저 맺혔다 흩날리고

한 발도 꿈쩍 할 수 없는 밀망무제 저 단에

 

꽃비린내 몸살 앓는 움푹 팬 가슴 한켠

꽃 대신 불을 밝힌 가로등이 들어앉고

붉게 핀 여명 바다로 첫 배가 출항한다 

 

 

 

부부

-못

 

 

 

완강한 벽을 두고

미당기는 힘의 균형

 

이물감 떨쳐내듯

살과 살을 섞을 때

 

비로소 풀리는 빗장

새살 쑥쑥 돋는다

 

 

 

달팽이 화가

 

 

 

빛과 선의 구족화가, 입도 발도 화필畵筆 드네

바람의 손짓 따라 화구를 등에 진 채

지상의 쓸쓸한 숲속,

길 떠나는 보혜미안

 

하늘샘에 고인 이슬 더듬이로 핥아먹고

돌담 벽, 한 땀 한 땀 끌고 가는 긴 화폭

쉼 없는 오체투지로

하루를 접고 펴며

 

햇살에 되비쳐오는 투명한 저 붓놀림

꽃피는 화판 가득 삐친 획 길이 될 때

비로소 풍경에 드는

한 생이 오롯하네

 

 

 

치자꽃 아다지오

 

 

 

수런대는 소문들이 가지에 걸여 운다

파장 긴 오후 햇살 방충망을 넘나들고

황혼녘 새 한마리가 창밖을 기웃댄다

 

바람의 기억들이 몸속으로 스며들 때

허공중에 떠나가는 지난 여름 발자국들

풀빛을 머금은 향이 가을을 손짓한다

 

해묵은 설렘처럼, 풋풋한 약속처럼

잎사귀 쭈뼛쭈뼛 꼭꼭 여민 계절 앞에

고단한 여정의 멍울

순백으로 표백하며

 

 

 

막사발 햇귀

 

 

 

발묵 가만 번져나는

 

물안개 핀 청평호반

 

손때 묻은 아침 창가

 

햇귀 한끝 부려 놓고

 

또 다시

 

탁본을 뜬다,

 

몰락한 왕조사를

 

 

 

 

 

 

사각의 형틀 위에

 

속절없이 매달린 채

 

바른 대로 고하거라,

 

볼기짝을 후려친다

 

하늘 쩡!

 

휘감는 소리

 

하소인 듯

 

통곡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