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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임영숙 시인 시집 엿보기 <풀잎의 흔들림이 내게 건너왔으니> 등록일 2020.10.08 16:5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411


임영숙.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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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영숙

경기 용인에서 태어나 경희대 문화창조대학원 미디어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4년 《나래시조》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풀잎의 흔들림이 내게 건너왔으니』가 있으며 〈나래시조젊은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나래시조》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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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로 찍고 가는
흘러가는 문장들

행간에 기대서 그대 기록 펼쳐간다

한 칸씩 짚고 건너는

원고지 위
푸른 은하



어느 봄날



아침과 낮 사이 두 계절이 오고 갑니다

바람결은 겨울인데
햇살은 봄이지요

노오란 유채꽃밭 사이 그녀가 달려옵니다

해마다 사월이면 그녀를 만나는데요

황소 눈물 괸 마당 끝
노란 물로 허기진 얼굴

내 속에
아른 대는 그날을

물끄러미 보고 섰다
 
 


소금쟁이 화법





마음으로 한 말은 깊숙이 스며든다

물 위를 걸어가는 표-면-장-력 추적자

일생을 말하고 다녀도
흔적없는 저 화법






달팽이의 청음





귓바퀴 감아 올린 묵직한 호른처럼
깊숙한 동굴 속에 소리 담는 닾팽이관 
휘어진 관 속을 채워 말아 올린 한소리

왼쪽 귀 달팽이관 미루나무 한 그루
하루는 새가 와서 지치도록 울다 갔다
새들의 언어를 두고
그림자가 출렁였지

빗속을 느릿느릿 걸어가는 느림보
이따금 삭제되며 사라지는 묵음들
생명선
더듬이 세워
고요 한껏 담는다



거리악사


신촌역 보도블록 위 피아노 치는 여자
발랄하게 걸어가는 발장단을 연주한다
그 곁에 흥얼거리는 발길 멈춘 청춘들

건반은 한 계절을 길 위에 놓인 채로
지나가는 바람을 잠사잠깐 불러세워
또 하루 바닥이 나도록 이야기 나누는데 

악보위를 지나가는 베토벤의 옷자락
그 겨울 찻집처럼 언제 여길 왔는지
내 가슴 설레임으로 르네상스 걷고 있다



찬 돌의 품위



용화사 암벽에 부처바위 앉아 있다
동자승 눈 비비며 꽃살문 살짝 열면

햇살에 미소 지으며
지긋이 웃는다

고라니 뿔 치받던 날 옷자락 펄럭이고
바람과 새의 수다가 귓바퀴에 날아와도

조금의 미동도 없이
바위 속 제자리

침묵의 앙금 덜며 경전에 눈길 둔다
속에 든 그 내력을 풀어낼 작정으로

보듬어 마주친 눈동자
소리 없이 스며든다



작은뿔사슴벌레의 긴 잠



내 얼굴 보여주니 날 보고 같이 웃어

하늘공원 층층 구름
홀로 잠든 그의 집에

화사한 꽃 문패 걸고 사진 한 장 넣었다


그 꽃집 사각의 뜰 구름이 몰려온 날

쉰줄에 줄을 놓친
작은 뿔 사슴벌레

더 이상 자라지않는 뿔을
잠 속에서 들이 받네



딱따구리

 

밧줄 묶은 고된 하루 먹빛 소리 매어놓고
수직 벼랑 움켜주고 딱다구리 부릴 쪼네
꽁지 끝 외줄에 기대
흔들리며 넘나든 삶

달비계 의지한 채 잠시 잠깐 숨 돌리는
거품 문 유리 일터 그늘이 숨어 있네
빌딩 숲 외줄을 타고
헛발 디딘 젊은 아비

비탈이 심한 경사 더디 걷는 발걸음
땅을 밟은 발등 위로 가는 길 낯설어
제자리 착지했어도
한 발 띄기 길어지네 



물끄러미



풀잎 하나 여릿여릿 흔들림을 보고 있다

풀잎의 흔들림이 내게로 건너왔으니

빛나는
문장 하나 품고
하루 종일
지켜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