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 시조나라 작품방
시조감상실
  • 현대시조 감상
  • 고시조 감상
  • 동시조 감상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신춘문예/문학상
  • 신춘문예
  • 중앙시조백일장
제주시조방
  • 시조를 읽는 아침의 창
시조공부방
  • 시조평론
휴게실
  • 공지사항
  • 시조평론
  • 시조평론

신춘문예/문학상

Home > 수상작품실 > 신춘문예/문학상
제목 2023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23.01.02 09:5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431

[2023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잔가지를 잘라내자 지저귐이 자라났다 

백진주


푸른 비단 유리알 쌓아 올린 서늘함
그보다도 가벼이 차오르는 창공에
먹물이 가로지르고 또다시 퍼져간다

우짖는 새들은 여린 깃을 뽑아낸다
발톱이 달라붙고 날개가 물들어도
부리는 홀로 남은 채 울음을 쪼아먹는다

가지마다 걸린 것은 갇혀버린 울음소리
검고 푸른 공백마다 삶 하나가 들어있다
껍질은 투명하기에 깨어질 수 없는가

바람은 한 점 없고 공기는 침묵한다
비명의 무게만이 잎이 되어 매달릴 때
가지는 몸을 떨었다 오지 않는 계절처럼


[2023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순간포착 시선과 참신한 시어 구사에 신뢰감


정형시는 원심력과 구심력의 경계 위에 존재한다. 원심력은 끊임없이 일탈하고자 하는 본원적 의지이고, 구심력은 반드시 지켜야 할 형식에 기인하므로 복잡한 시대일수록 형식 미학은 더욱 강조된다.

정형의 가락 위에서 참신성과 시대성을 담보한다면 작품은 분명 돋보일 것이다. 응모한 500여 편의 작품은 대체로 그런 기준 위에서 내면 의식을 치열히 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수와 수, 장과 장이 갖춰야 할 양식적 특성을 완벽히 소화하지 못했거나 흔히 사용되는 시어,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투성 등 잘라내야 할 사족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작품도 더러 있었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을 떠나지 않은 세 작품을 대상으로 순위를 정하기로 했다. ‘한라주목’은 눈보라를 견디는 한라산 주목을 소재로 그 기개와 심연에 가 닿고자 하는 욕망을 노래한다. 연시조는 수와 수의 정체성을 유기적으로 끌어가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둘째 수 초장에서 시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전체의 얼개를 무너뜨린 점이 단점으로 지적되었다.

‘비단왕거미의 건축학’은 참신한 발상과 안정된 보법이 착실한 습작 과정을 보여준다. 거미집을 직조하는 모습을 섬세한 시각으로 묘사한 것이 이채로웠지만 앞에서 말한 상투성을 극복하지 못한 예가 되고 있다.

‘잔가지를 잘라내자 지저귐이 자라났다’는 우선 제목부터가 신선하다. 안정감은 다소 떨어지나 순간 포착의 시선이 좋고, 자신만의 시어로 구와 구를 견지하려는 자세에 믿음이 간다. 현대시조 창작에 있어 신선미는 다른 무엇과 바꿀 수 없는 미덕이다. 함께 보내온 다른 작품에서도 그런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동의했다.

당선의 영예를 안은 시인에겐 축하를 보내고, 선에 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이달균 손증호 시조시인




[당선소감]

시조, 다 알지 못하기에 진전할 수 있다 믿어요


처음으로 시조를 써본 것은 초등학교 지역 공모전에서였다.

시가 무언지 문학이 무언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3434를 외며 풀밭에 앉아 쓴 단시조의 기억이 어렴풋하다. 시간이 지나 시구는 희미해졌으나 시조가 처음 마음을 스치고 문장으로 나타난 그 순간이 어쩐지 오래 남아있다. 그 후 오랜 시간 시조에 관심을 두지 않고 살았다. 솔직하게는 시조가 현대문학과 단절된 고전처럼, 어떤 면에서는 고리타분한 정형시로만 느껴졌다. 무엇이든 틀을 깨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시대에 형식과 규율이란 때때로 ‘타도’의 대상이 되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며 당연하게도 고전문학을 피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예상치 못했던 부분은, 남이 쓴 글을 배우던 단계에서 내가 직접 써야만 하는 단계로 넘어왔다는 점이었다. 시조가 학습과 연구의 대상이 아닌 ‘창작의 대상’으로 변하자 이전에 알던 지식은 모조리 뒤로 물러나야 했다. 나는 시조라는 장르를 조금도 알지 못했다. 편견을 거두니 시조 본연의 구조는 따분한 구속이 아닌 하나의 완결된 미학이었고, 현대로 이어진 시조는 그 형식 안에서 나름의 재구성과 확장을 거듭하며 살아서 존재하고 있었다.

당선 소감을 작성하며, 당선된 작품을 다시 보니 그 미흡함에 아쉬움이 찾아든다. 당선작은 유년 이후 처음으로 완성한 시조인지라 애착이 큰 만큼 자신의 부족함을 실감하게 한다. 나는 아직도 시조를 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무언가를 완전히 이해한다고 단언하는 순간 그 대상에의 사랑은 완결되어 더 나아갈 수 없다고, 그러므로 어쩌면 무지(無知)는 내가 지닌 가장 좋은 것이리라고 믿는다. 심사를 맡아주신 이달균 시조시인, 손증호 시조시인과 더불어 문장으로 만날 모든 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보낸다.


▶약력= 2001년 경기도 김포시 출생. 현재 대학에 다니며 문학을 공부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