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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23.01.02 18:2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554

호모 라보란스*

김미진

 

아버지 신발에는 나이테가 자랐다
숲 향기 묻은 채로 귀가하는 밤이면
바다도 딸려왔는지
비릿한 게 묻어있다

올곧게 뼈를 세워 검은 먹줄 튕기면
수평선에 넘실대는 아버지 푸른 힘줄
부푸는 몸부림들이
등대 곁에 잠들었지

목선의 피돌기 때 버텨온 바닥의 힘
새벽녘 갑판 위에 쏟아지던 아버지
비릿한 지느러미는
출렁이는 생이었다


*호모 라보란스(Homo laborans); 노동하는 인간


[심사평]

전국이 매서운 추위와 눈보라에 묻힌 날, 부산은 햇살만 가득했다. 거리의 앙상한 나무들이 가지를 흔들며 겨울을 재촉하고 있었다. 더구나 시조에 관한 신춘문예가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오륙도신문>에 시조가 신설되어 전국과 해외에서 응모한 작품들을 보고 새삼 놀랐다.


심사위원들은 번호로 표기된 작품들을 서로 돌려보며, 긴 윤독의 시간과 토론을 거쳐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당선작으로 김미진씨의 시조 「호모 라보란스」로 결정했다.


호모 라보란스는 노동하는 인간을 나타내며, 그 노동이 인간생존을 위한 본능이기 때문이다. ‘AI'에 인간의 생존영역은 점차로 줄어들었다, 김미진의 「호모 라보란스」는 이런 문제들을 시조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작품 흐름 속에서 일관되게 ’아버지‘를 내세워 우리를 그 삶의 현장으로 이끌고 간다. “바다도 딸려왔는지 / 비릿한 게 묻어있다”에서 더 재현되는 “비릿한 지느러미는 / 출렁이는 생이었다”처럼, 실존의 문제를 짚어내는 시조 「호모 라보란스」는 우리 전체의 삶을 관통하는 푸른 숨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새로운 시인으로 첫발을 내민 김미진씨에게 축하의 말씀을 드리며, 다양한 정형미학의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 박현덕〉



[당선소감]

연악한 살로 초록을 일궈내면서

  
 
밤으로 떠돌던 책갈피를 덮고

잘게 밀리는 물결도 접고
흘러드는 구름만 외눈박이 창가에
파도 소리를 끌고 와 섬으로 앉았다.

외눈박이 시절이 있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복시(사물이 여러 겹으로 보이는 현상)로 황망해 했던 시간들, 우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폭우로 내리던 어느 날, 부르튼 몸뚱이의 지렁이가 몸을 비틀고 있었습니다. 징그럽다는 생각에 앞서 저 연약한 살로 초록을 일궈내면서 어떻게 땅의 과적을 견딜까...,
나만 힘들고 중요한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문학 유튜브를 들으며 독학을 시작하면서 삶의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것들을 들춰내는 문학에 위로가 되었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던 날,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강아지처럼 기뻐 눈 쌓인 놀이터를 얼마나 달렸던지...
“겨울산을 오르면서 나는 본다/가장 높은 것들은 추운 곳에서 /얼음처럼 빛나고/ 얼어붙은 폭포의 단호한 침묵/가장 높은 정신은/추운 곳에서 살아 움직이며/허옇게 얼어터진 결빙을 노래한다” –조정권, 산정묘지 중에서-
원대함에 아픈 시인들을 보면서 그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가르침을 주신 시인 김재석 선생님, 김수진 선생님, 학예실장 조순현 선생님, 화가 박수경 선생님, 최여숙 선생님에게 감사드리며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 딸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