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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4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24.01.02 10:3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671

[당선작]


채렴을 읽다 -

문윤정



옮겨 든 바다가 무자맥질 숨길 풀 때

불볕 터진 하, 목마름 온몸에 두른 염전

치열한 역류의 물결 부서지고 고이면서

 

견디는 망막에 아린 결정체 되새김할까?

바람살에 서럽도록 들썩이며 얽힌 속내

짓물러 뒤챈 상처가 순백의 꽃 피우고

 

허공 짚고 쏟아지는 잔별들 획을 긋고

도돌이표 궤도 따라 흰 뼈대로 추스른 허기

오랜 날 매인 가래질, 짜디짜게 길들여진 채

 

절인 몸피 버석대는 늙은 염부 그 한 생애

윤기 도는 짠맛 세상 혀끝 절로 사로잡고

지나도 또렷이 남는 길 소금처럼 반짝인다

 

*채렴: 염전에 잔뜩 깔린 소금을 모아 야적장에 옮기는 일.

 

 

[심사평]

부정확한 어휘의 바다 속 반짝이는 천일염 작품/유재영

 

예심을 거쳐 올라온 것은 단 8명의 작품 25, 대다수가 관념어와 상투어 남발로 현대시조라고 볼 수 없을 만큼 그 수준이 떨어졌다.

 

가령 몹쓸 봄 마지막 품사위 체리불러썸 퀵퀵’ ‘오래된 끽연의 기억이 비를 받아먹고 있다’ ‘마음 속 마지막까지 깐깐하게 달려가요’ ‘잡어로 잡혀온 삶이 측은지심 같더란다’ ‘속내 다 까발리는 세상이 흔했던가’ ‘당신의/ 휘어진 탄성으로/ 한 뼘 더 커집니다같은 표현들이 과연 신춘문예 응모작품 수준인가 의아심이 들 정도였다. 예선 탈락자 작품을 모두 뒤져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그럴만한 권한이 없었다. 시는 관념어와 상투어와의 싸움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시인으로서 가능성은 접어야 한다.

 

당선작 선정 포기 직전 채렴을 읽다와 같은 원숙한 작품을 발견한 것은 다행이었다. 당선작 채렴을 읽다는 부정확한 어휘들이 허우적거리는 바다에서 건져 올린 천일염처럼 반짝이는 존재였다. 네 수 모두 안정감 있고 구성면에서도 기승전결이 분명했다. 시가 보편적 정서에 접근한다는 것은 많은 독서와 창작을 겸하지 않고는 결코 이를 수 없는 지점이다. 응모자의 다른 작품 사유를 탁본하다도 수준작, 그러나 입가에 미소 그윽하다와 같은 상투어들이 눈에 거슬렸다. 잘 다져진 기본기를 바탕으로 정밀성과 섬세함을 더한다면 당선자에 거는 기대가 결코 어긋나지 않으리라.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명분에 앞서 내가 아니면 표현 할 수 없다는 현대시조로서의 독특한 개성을 지닐 때만이 당선자에 대한 시조단의 주목은 시작될 것이다.

 

악력

-시집 <지상의 중심이 되어> <고욤 꽃 떨어지는 소리> <햇빛 시간> <와온의 저녁> <변성기 의 아침> <구름 농사> 등 출간

-오늘의 시조문학상·이호우시조문학상·가람 시조 문학상·편운문학상 등 수상

 

[당선소감]

꿋꿋하게 살아가며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휴대폰을 움켜쥐고 인도를 걸었습니다. 당선 통보를 받자,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운 좋게도 든든한 디딤돌을 밟고 서는 행운을 선사 받게 됐습니다. 우산을 때리는 빗방울도 축하 연주하듯 경쾌했습니다. 빗방울 탄주를 받으며 이렇게 신출내기가 탄생하는 것일까요.

 

직장 일과 두 아이의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지역 시민예술대학 문창반과 유튜브 강의, 다른 매체들을 통해 시조 공부를 해왔습니다.

 

읽고 쓰고 필사하고 사유하면서 시조에 대한 매력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암중모색일 뿐이었습니다. 거듭거듭 좌절을 겪는 아픔을 이겨내야 했습니다.

 

간절하면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막연한 믿음에 매달리며, 정형이라는 틀 안에서 자유롭게 사유를 형상화해 낼 수 있도록 매진했습니다. 내공이 쌓일수록 시조의 완성도를 추구하게 되고 그 미학에 빠져들었습니다.

 

일상의 짐이 버거워 위축된 저에게 정신적 탈출구가 되어준 것이 바로 시조였습니다, 수십 번 퇴고 끝에 한 작품을 마주하면서, 그 희열이 바로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포기할 수 없을 만큼 시조에 대한 깊은 애착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며 저 스스로 채찍질을 거듭하겠습니다.

 

아직은 시조시인으로 당당히 내세울 자신은 없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각오와 함께 나만의 문체와 역량을 다지며 작품으로 세상과 공감대를 이뤄가겠습니다. 거듭 밝히지만, 겨울나무처럼 꿋꿋하게 살면서,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언제나 시조에 시간을 빼앗긴 나머지 마음 한 자락 돌려 앉혀 놓고 사는 저를 그래도 늘 응원해 주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 기쁨을 나누겠습니다. 부족한 작품을 챙겨주신 심사위원들과 경상일보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악력

-경기 평택 출생

-단국대 간호학과 졸업

-현재 중학교 보건교사로 재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