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심사평]
깊은 사유의 미학… 한국화 보듯 고전적 미감 여운 남겨
소재도 다양하고 응모 지명도 국내외 여러 곳이었다. 이러한 결과는 동아 신춘의 권위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르게는
삶의 고난이 심대할수록 사람들은 심미적 실존에 더 관심을 갖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여 윤독의 대상이 된 작품으로는 ‘조등이 핀 자리’ ‘슬픔의 이력’ ‘별자리를 읽다’ ‘그늘의 생존
법’ ‘섬’ 그리고 ‘동물성 바다’가 있었다. 이 중에서 표현의 묘를 얻었으나 제목이 신춘문예로는 어색한 것, 육화되지
못한 서정, 쉽게 수락하는 일상의 애환 스케치, 혹은 너무 평범한 어둠에 관한 노래, 모국어에 대한 애정과 구사 능
력을 인정하지만, 사색의 깊이가 얕다는 것 때문에 당선권 밖으로 밀려나고 한 작품만 남게 되었다. 비교해서 약점
을 찾는 자리가 이 제도여서 탈락은 되었지만, 위의 작품 중에서도 우수한 작품이 적지 않았다.
마지막 남은 작품이 ‘동물성 바다’였다. 바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풍경을 그렸다. 묘사 능력이 탁월할 뿐 아니라 깊
은 사유의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 마력은 전통 한국화를 감상할 때 흔히 느끼게 되는 고전적 미
감 같은 여운이었다. 우리 심사위원들은 기쁜 마음으로 이견 없이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상투성을 타파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작품이거나 전망 부재의 내일을 그리는 작품이거나 잘못된 사회에 대한 방법
적 대응을 모색하는 작품이거나 이 시대의 쟁점을 파고드는 뜨거운 작품은 아니지만, 고요한 사색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하는 이 작품이 또 하나의 개성이 돼 한국 시조의 내일을 열어주길 기대하며 축하의 꽃다발을 전한다.
[당선소감]
당선소감고은산 씨 졸작을 앞에 두고 고민이 많으셨을 심사위원님께 먼저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잡아
주신 응원의 손길이 앞으로 시조의 길을 걷는 제게 큰 힘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길이 팍팍할
때마다 오늘의 이 순간을 꺼내 보겠습니다.
당나라 시성 두보는 “성질이 원래 아름다운 것을 탐하여 사람들이 놀라는 어구를 찾지 못하
면 죽어서도 그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시의 깊이가 접시의 물보다 얕은 저로서는 감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경지입니다. 다만 당선자의 각오로 이 구절을 가슴에 새겨 한 사람이라도
울릴 수 있는 시조를 한 편이라도 남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수상에 대한 보답이라
고 생각합니다.
당선 소식을 듣고 부모 형제와 가까운 지인들, 그리고 시조를 가르쳐주신 스승들이 떠올랐습
니다. 그러나 한 명 한 명 호명하여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너무 의례적이고 진부하다고 느껴졌습니다. 하여, 제 마음
에 감사의 방 하나를 따로 마련하여 그 이름들을 모셔두고 오래오래 감사의 마음을 전하겠습니다.소감의 마지막이 그렇듯이 저도 가족에 대한 인사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시조를 쓰도록 옆에서 밀어
준 아내와, 언제나 초고를 읽고 따뜻한 평을 해준 딸과, 시조가 뭔지 몰라도 아빠의 시조라면 일단 읽어주는 아들에
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1967년 충남 보령시 출생 △한남대 국어국문학과 학사,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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