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
쇠뜨기
박권숙
불가촉 천민으로 이 땅을 떠돌아도
너는가을벌레처럼흐느껴 울지 마라
풀밭에 온몸을 꿇린 소처럼도 울지 마라
세들 쪽방하나 없어 어린 뱀밥내어주고
흙 한 뼘 햇살 한 뼘 지분으로 받아든 죄
무성한 바람소리에 귀를 닫는 저물녘
뽑히면 일어서고 짓밟히면기어가는
너는끊긴 길 앞에서아무 말 묻지 마라
허공에 흩뿌린 풀씨 그 길마저 묻지 마라
<신인상>
점등 무렵
조성문
매운바람키를 높인 빌딩 벽 상가 골목
뒤태가 영 허전한 들먹이는 어깨 위로
속 훤히 들여다보이는
알전등눈을 뜨네
보행기 밀고 가는 구붓이 휜마른 등에
무어라 토닥거리듯불빛 또한 따스하다
기우뚱 골판지 가득
발등 부은 저문 하루
하루치 모서리에 일구다 다친마음밭
고개 숙인외눈박이 불만종처럼 퍼질까
막소금 눈 설치는 길
탁탁 튀는 곁불 쬐네
<신인문학상>
드럼 세탁기
전향란
오늘을 몽땅 벗어 통 안에다넣었다
자존과 허망과불협화음 그마저도
얼룩진 삶의 흔적을 세탁기에 돌린다
녹록하지않았던매순간의드라마가
재생되어돌아간다 얽히고 또 설킨 인연
한 스푼 세제를 넣어 갈등을풀어간다
스크린 너머로빨래들의소용돌이
거품을 물고 가는 한 생이 치열하다
치대고 씻어 내리고 두드리며 가는 길
헹굼질 몇 번이면 순백한 삶이 될까
건조대에매달린경건한 일상이여
집게에 늘어져버린 어깨를곱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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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내 눈 속의 붉은 마녀
서상희
거울을 바라보네 내 눈 속 머리카락
어제보다자라났네 검붉게 물들었네
오늘은 자소설*쓰네 이틀밤을 새우며
입안 가득종이 넣고 꼭꼭 눌러씹었네
갈등극복영웅기이왕이면 대서사시
사실은 나트륨이던 조미료인생사여
2002 빨간색풍선은부풀었네
2014수능은수리가 중요했네
엄마는 내 그림자를 돌돌 마네 베어 무네
특기는 돌진하며 들이받기잘합니다
취미는 빵처럼잘 부풀어 오릅니다
한 움큼 하룻밤 마다 자라난혓바닥들
영웅이 되리라눈 속의 붉은 실을
눈 밖으로꺼내붉은 카펫 짜리라
그 위에 궁전을 짓고 붉은 마녀 되리라
*자소설이란? 자신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과장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취업 준비생들의 자기소개서를 일컫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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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의류수거함
김범렬
재활용 의류수거함뱃구레가홀쭉하다
보름달 풍선처럼 제 깜냥 부푸는 변장
푹 꺼진 분화구 속에 적막 하늘 담고 있다
잠 못 든 한 사내가 그 옆에 누워있다.
이웃한 박주가리 덩굴손 감아올리고
첫 대면 어색한 동거에치열한자리다툼.
몇 끼나 걸렀을까? 덩치 큰 하마 같이
버려지는헌옷가지 한 입에 삼켜버릴
장벽을 허무는 바람, 아린 속어루만진다.
느꺼웠던지난날 주머니처럼까집어보다
하릴없는남루에먼지만 뒤집어쓴
저 와불 벌떡 일어나 주린 배를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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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세한도(歲寒圖)를 읽다
용창선
잔기침에잠 못 들던 풍설(風雪)도 그치고
수런대던안부들마저발길 끊은 겨울 아침
차디찬 살을 부비며 먹 가는 소리듣는다
수척한 바람 하나, 빈 마당을쓸고 가면
천리 바다너머인가, 맵고도 시린 목숨
묵선(墨線)에 핏물이 돈다새 살이돋아난다
쌓이는 눈뭉치에 몸을 꺾는한때의 적막
수묵의 갈필로도 못 다 그린 그리움은
뼈마디 시퍼런 결기(結氣)로빈 들판에 홀로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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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소금꽃
장계원
개펄을 달구는뜨거운 바람이 분다
달아나 숨을 곳은 그 어디에도 없기에
차라리 제 몸 가두고 웅크려 앉은바다
발 물레 잣는 핏줄 터질 듯 꿈틀대면
맴도는 바퀴에울렁증 난 바다는
울대에 걸린 갯물을 울컥울컥 토하고
숨 막힌 풀무질에 온전히 태워질 때
별처럼 돋아나는 순백의 결정들
정화된 우주 하나가 토판 위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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