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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6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16.01.13 18:12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696

 

2016년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역광의 길

고혜영

 

때 되면 자리를 비우는 가을 숲이 사람들 같다

헛헛한 밑둥치에 한 잎 두 잎 내리는 가을
뒤따라 내려온 햇살에 눈물겨워 오는 길

올가을 내 안의 숲에도 가지들을 비워야지
방울방울 산의 열매 아껴먹던 새들조차
나직한 날갯짓으로 찡찡 울며 나는 길

붉은 것은 붉은 대로 노란 것은 노랑대로
떠나갈 무렵 해서 제 속내 다 드러낸 길
빨간색 화살표 하나가 역광 속에 보인다.

  

[당선소감]

아이 위한 치유로 시작한 글쓰기 덕분


 30여년 봉직했던 직장 퇴임 후, 계약직 첫 출근 날, 신문사가 당선소식을 알려왔다. 막내 아이의 독서 치유로 시작된 것이 글쓰기 치유로 이어지면서 우리 아이는 어느새 꽃과 별과 달과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어눌한 표현들이지만 아이의 한 마디 한 마디는 엄마의 눈물을 닦아줄 만한 보석들이다. 나에게 글을 쓰게 한 것은 바로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승일이의 덕이었다.

아이의 눈높이로 단어를 이어가며, 단어 하나하나에 가락을 입혔다. 그렇게 시조는 내게로 왔고, 글쓰기야말로 가족에게는 슬픔을 이기는 약이었다.

직장, 사회활동, 가족 및 불편한 아이의 수발 등의 그 와중에 끼어든 글쓰기가 어느새 나의 중심에 자리 잡고 말았다. 시조라고 해서 과거형 노래가 아니라, 현재진행형인 오늘의 삶의 현장에서 부르는 노래의 한 형태라 배웠다.


이번 당선작 '역광의 길'은 순전히 일요일 아침 친정인 성산포 신양리로 향하는 동부산업도로가 선사한 초딩 수준의 가을 수채화인 셈이다. 미흡한 제 글로 문단 말석에 세워주신 한라일보와 심사위원님께 우선 감사드린다.

시조가 젊어져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을 안고 시조쓰기에 골몰하는 우리 '젊은시조 문학회' 회원들과 이 영광을 함께하고 싶다.



그리고 기억의 창고에서 아직도 유년의 감성을 꺼내 쓸 수 있도록 배경이 되어 준 나의 고향 신양리 바다와 올레길, 동네 그리고 생활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시심을 품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꼭 껴안아드려야겠다. 공직생활을 은퇴하고 멀리 캄보디아에서 공직의 경험으로 나눔을 실천하고 계시는 남편께 사랑한다 전한다.


 


▶약력 ▷1958년 제주 성산읍 신양 출생 ▷탐라대학교(현 국제대학교) 사회복지(석사) 졸 ▷전 NH농협은행 지점장 ▷젊은 시조문학회 회원.

 

 

[시조 심사평]'역광' 속의 의미 찾기

 

2016 한라일보 신춘문예가 사고를 쳤다. 지금까지 시와 소설만 공모해 오던 낯익은 풍경 대신, 시조부문을 신설하는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한라일보가 신춘문예를 시행한지 사반세기 만의 일이다. 사실 신춘문예를 시행하는 전국의 거의 모든 일간지들이 그렇듯이 시, 소설과 더불어 시조를 공모하는 것이 대세다. 현대시조의 역사적, 문화적, 문학적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별도의 지면을 빌어 언급해야 하겠지만, 한라일보의 변화가 한국시조계에 던지는 희망은 크다.


그만큼 큰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작품을 읽었다. 공모 첫해임에도 불구하고 기다렸다는 듯이 응모작의 숫자도 많았고, 작품의 질적 수준도 오랜 기다림에 값하는 작품들이 많았다는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어렵사리 마련된 이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을 작품을 가리는 것은 결코 녹록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고심 끝에 '개밥바라기별'(조우리) '어느 아침'(장영심) '역광의 길'(고혜영) 등 세 편을 최종적으로 남겨두었다. 어느 작품을 선택해도 개성적 목소리로 시조에 현대적인 새 옷을 입혀줄 신인이 될 것이란 기대를 걸어도 좋을 작품들이었다.


'개밥바리기별'은 신선하고 패기는 있었으나, 비유를 통한 참신한 이미지의 생성이 아쉬웠고,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다소 약하다는 느낌이었다. '어느 아침'은 물질로 쏠리는 현대인들의 심리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냈지만, 역시 시적 이미지 형성이 아쉽고, 신선미가 부족했다.


결국 '역광의 길'을 당선작으로 민다. 이 작품은 가을 숲의 나뭇가지들처럼 비움의 미학을 통해서 고단한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성찰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떠나갈 무렵 해서 제 속내 다 드러낸 길'에서 '빨간색 화살표 하나가 역광 속에 보인다'는 표현은 압권으로 시 전체에 탄력과 긴장감을 준다.


어쩌면 그 표현대로 시인의 길, 특히 신인의 길은 역광 속의 의미 찾기일 지도 모른다.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부문 1호 당선자로서의 기대에 값해 주기를 바란다.  - 오승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