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도 없이 늦가을이 들이닥쳤다. 또 온몸이 가렵다. 그렇게 새봄 앓이를 다시 시작했다. 이름하여 신춘이라는 병.
부재중 전화, 063-284-0000. 혹시나 해 걸어도 걸어도 다시 걸어도 통화 중이다. 피가 더 마르기 전에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광고다(싫어요 63, 괜찮아요 0). 욕이 나왔다.
손이 울었다. 02-780-0000. 덜컥 내려앉았다. 드디어 때가 되면 온다는 기별이 오시는가.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후보 허경영입니다.
존경하지는 않지만 이런 양반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욕이 나왔다.
사실 나는 ‘이런 양반’이 되고 싶었다. 하나쯤 있어도 괜찮은 다른 목소리의 양반, 아니 내 목소리라면 상놈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누가 이런 양반놈을 뽑겠는가.
한때는 주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빌고 또 빌어도 한 문장 발기하지 않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詩야!
습관처럼 절망하다, 욕하다, 포기할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경남’이었다.
이 턱 저 턱 없다, 연락들 하지 마시라. 쓰기는 쓰되, 함부로 쓰지 말고 아껴 쓰자 새삼 다짐했으니까. 중언부언 지우고, 있어도 그만 빼고, 없어도 그만 버리면서 한 글자 두 글자 정말 아껴가며 딱 세 줄만 쓸 생각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일용할 양식이 없다고 눈치 주는 마눌님, 이용할 언덕이 없다고 떼쓰는 딸내미들, 아무래도 얼마 못 살 것 같은 망백(望百) 지난 엄마, 아직 한참 남은 것도 같고 멀지 않은 것도 같은 망구(望九) 지난 장모와 같이 사는 집에도 볕 들 날이 있기를.
시 쓰는 줄 까마득히 모르는 회사에도 영광이, 라고 쓰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다. 너무도 보잘것없는 약력인데 요즘 칼바람이 장난 아니다.
시조 부문 당선자 정두섭 씨 (△1966년생 △인천 거주 △서해종합건설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