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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등록일 2022.01.03 15:49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570

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달의 뒤축

정두섭



굽 닳잖게 살살 가소

얼매나 더 산다꼬


잦바듬한 달이 간다 살 만큼 산 달이 간다

작년에 갈아 끼운 걸음으로 아득바득 가긴 간다


너저분 문자향을 공들여 염하고서

널브러진 서권기 오물오물 씹으면서

골목을 통째로 싣고 살 둥 죽을 둥 가긴 간다


참 서럽게 질긴 목숨이 등허리 휜 달빛을

닳고 닳은 달빛을 흘리지 않아, 시방


만월동

만월 수선소 일대가 무지로 깜깜하다


[심사평]

 ‘간다’의 중의성 활용·명사와 동사의 역설 탁월해


시조의 장르 위상은 시의 하위 갈래로서 자유시와 짝을 이루는 것이다. 두 갈래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으로 공존하면서 시의 창조성에 참여하기 때문에 시조의 생명력은 정형에 있다. 이때 정형이란 음수율 같은 형식상의 규범을 포함한 구조의 완결성을 뜻한다.


올해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대체로 형식의 규칙을 지키려 하는 한편 실험 의식은 적어서 비교적 온건한 경향을 보였다. 그 중 정형의 완결성과 시적 형상화가 조화를 이루는 작품들을 가려내고, 다시 숙고하여 세 사람의 작품을 두고 오래 고심하였다. 정두섭의 ‘달의 뒤축’, 장수남의 ‘호두의 집2’, 조영란의 ‘숲의 안경’ 세 편은 각자의 개성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달의 뒤축’은 구조적으로 탄탄하고 말을 유려하게 부려썼지만 사설이 다소 늘어졌다. ‘호두의 집2’는 기억이 뜯겨나가 치매 앓는 엄마가 굳은 뇌 달각대는 호두 속 미로에서 헤매는 상태를 절실하게 그렸지만 설명에 치우친 편이다. ‘숲의 안경’은 식물을 소재로 하여 생존의 내밀한 긴장 관계를 이미지로 제시한 작품이지만 시조적 완결성이 좀 약하다.


당선작인 ‘달의 뒤축’은 몇 가지 점에서 높은 성취도를 보여준다. 우선 제재인 달과 그것의 작용인 “간다”가 중의적으로 혼합되었다. 간다는 동사로 인해 달은 하늘의 실물이기도 하고, 시간의 단위이기도 하고, 그에 대응되는 노인이기도 하다. 이들이 넘나들면서, 살아왔음과 살아갈 것 사이에 역설이 이루어진다. 


특히 둘째 수는 장마다 명사와 동사가 모두 역설을 드러낸다. 구조적으로도 하늘의 달과 땅의 사람이 계속 얽히면서 흘러가고 걸어가다가 마지막의 종장에 이르면 망월이라는 지명과 만월이라는 장소명을 통해 땅으로 고정된다. 그렇지만 깜깜하다는 어두움에는 달의 속성으로 인해 밝아지는 희망이 내재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가 도드라지지 않고 유연하게 흘러가는 것은 작품을 관류하는 능숙한 말 부림에 기인한다.


 그만큼 언어 감각이 뛰어나거나 오랜 습작을 거친 결과일 것이다. 응모작 네 편이 소재의 폭을 넓게 취하였으면서 수준이 고르다는 점도 당선자의 작품을 뽑는 데 믿음을 주었다. 신춘문예는 발전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선자는 물론 응모자들 모두 계속 분발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심사위원 김진희·장성진


[당선소감]

하나쯤 있어도 괜찮은 다른 목소리의 작가 될 것


기별도 없이 늦가을이 들이닥쳤다. 또 온몸이 가렵다. 그렇게 새봄 앓이를 다시 시작했다. 이름하여 신춘이라는 병.

부재중 전화, 063-284-0000. 혹시나 해 걸어도 걸어도 다시 걸어도 통화 중이다. 피가 더 마르기 전에 전화번호를 검색했다. 광고다(싫어요 63, 괜찮아요 0). 욕이 나왔다.


손이 울었다. 02-780-0000. 덜컥 내려앉았다. 드디어 때가 되면 온다는 기별이 오시는가.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대통령 후보 허경영입니다.

존경하지는 않지만 이런 양반 하나쯤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욕이 나왔다.

사실 나는 ‘이런 양반’이 되고 싶었다. 하나쯤 있어도 괜찮은 다른 목소리의 양반, 아니 내 목소리라면 상놈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러나 누가 이런 양반놈을 뽑겠는가.


한때는 주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빌고 또 빌어도 한 문장 발기하지 않는데……. 나보고 어쩌라는 것이냐, 詩야!

습관처럼 절망하다, 욕하다, 포기할 때 누군가 어깨를 툭 쳤다. 돌아보니 ‘경남’이었다.

이 턱 저 턱 없다, 연락들 하지 마시라. 쓰기는 쓰되, 함부로 쓰지 말고 아껴 쓰자 새삼 다짐했으니까. 중언부언 지우고, 있어도 그만 빼고, 없어도 그만 버리면서 한 글자 두 글자 정말 아껴가며 딱 세 줄만 쓸 생각이다. 그거면 충분하다.


일용할 양식이 없다고 눈치 주는 마눌님, 이용할 언덕이 없다고 떼쓰는 딸내미들, 아무래도 얼마 못 살 것 같은 망백(望百) 지난 엄마, 아직 한참 남은 것도 같고 멀지 않은 것도 같은 망구(望九) 지난 장모와 같이 사는 집에도 볕 들 날이 있기를.

시 쓰는 줄 까마득히 모르는 회사에도 영광이, 라고 쓰는 건 살아남기 위해서다. 너무도 보잘것없는 약력인데 요즘 칼바람이 장난 아니다.


시조 부문 당선자 정두섭 씨 (△1966년생 △인천 거주 △서해종합건설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