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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0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20.01.01 07:2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638


선잠 터는 도시

 

정인숙

 

1.

선잠 털고 끌려나온 온기 꼭 끌안는다

자라목 길게 빼고 순서 하냥 기다려도

저만큼 동살은 홀로 제 발걸음 재우치고

 

나뭇잎 다비 따라 꽁꽁 언 발을 녹여

종종거릴 필요 없는 안개 숲 걸어갈 때

여전히 나를 따르는

그림자에 위안 받고

 

2.

정원 초과 미니버스 안전 턱을 넘어간다

목울대에 걸린 울화 쑥물 켜듯 꾹! 넘기고

몸피만 부풀린 도시,

신발 끈을 동여맨다

 

 

 

[심사평 시조]

최종까지 눈을 떼지 못하게 한 작품은 ‘물의 어머니’ ‘이정표로 뜨는 달빛’ ‘모죽’ 그리고 ‘선 잠 터는 도시’였다. ‘물의 어머니’는 수사가 근사하고 터치가 시원시원해 모던한 느낌이 들었다. 같은 작가의 ‘명자꽃’도 탄력성 있는 언어가 비눗방울이 되어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런 장점에 비해 울림이 부족했다. ‘이정표로 뜨는 달빛’도 표현 능력은 무난해 보였으나 내용 면에서 다소 단순했다. 그 작품 셋째 수에는 눈에 익은 가난 얘기가 나온다. 당선에 값할 만한 내용의 세목이 부족해 보였다. ‘모죽’의 경우 작품 완성도나 내용의 깊이에서는 단연 돋보였다. 그래서 여러 번 읽고 토론했지만 어휘 사용 면에서나 소재 면에서 신선함이 부족했다.

 
결국 올해의 영광은 ‘선잠 터는 도시’를 쓴 정인숙 씨에게 돌아갔다. 시인은 우울한 오늘의 도시를 심도 있게 그렸다. 연필화처럼 희미한 선으로 그린 애잔한 풍경은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문제에 직면한 우리의 현실을 상상하게 하는 여운을 머금고 있다. 구성 면에서 의도적으로 ‘1’과 ‘2’로 나눈 것도 충분히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1부의 경우 인력시장의 가혹한 풍경을 그려놓고 2부는 인력시장 밖의 그늘을 그려놓고 있다. 2부 종장의 ‘몸피만 부풀린 도시/신발 끈을 동여맨다’는 이 시조의 화룡점정이라 할 수 있다. 외화내빈의 카오스 속에서도 그 생활에 절망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고자 하는 소시민의 의지가 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부디 삶에 뿌리내린 건강한 시정신으로 한국 시조문학사의 내일을 만들어가는 일꾼이 되길 바란다. 대성을 빈다.

이우걸·이근배 시조시인
 
 
[당선소감 시조]
발을 동동 구르다, 통통 뛴다… 신춘으로 온 내 봄을 맞는다
정인숙 씨
말하듯 쓰는 거야. 말을 글로 쓰라니까 곱씹어 땅 깊이 묻는다. 나의 봄은 늘 춥고 허기졌다. 양볼 가득 말을 넣고 씹고 또 씹는다. 오른쪽으로 씹고 왼쪽으로 씹어도 언제나 배는 고프고 봄은 안 온다. 말이 거짓말을 하자 글은 증거를 남겼다. 질겅질겅 한쪽에 묻어두고 또 거짓말을 쓰고 더 할 거짓이 없을 즈음 드러나는 진실….

병아리 혓바닥만 한 싹이 비척한 땅을 뚫는다. 고물상 앞을 지나다가도 글이 보이면 쭈그려 앉는다. 폐휴지 더미에서도 훔치듯 글을 따먹었다. 거리의 간판들도 내겐 신기한 먹을거리가 되어 입 가득 말을 물고 부르르 손짓하면 휘파람 음률이 생겼다.

봄이다. 봄이 왔다. 똑같은 하루가 왜 이리도 긴 건지. 휘청거리는 다리를 볏단처럼 묶어 간신히 앉는다. “봄이 왔어요.” 허공에 대고 소리친다. 권투 경기처럼 잽도 날려본다. 발을 동동 구르다, 통통 뛰다, 신춘으로 온 내 봄을 맞는다.

아차차! 해야 할 인사말도 잊었다.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무대 위 배우처럼 감사 인사드린다. 처음 손을 끌고 길을 알려 주신 백윤석 선배님, 말을 잘 읽을 수 있게 귀한 글 보내주신 박기섭 선생님, 글의 앞뒤와 깊이를 가늠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신 윤금초 교수님, 그리고 생면부지 한 번도 뵌 적 없는, 단단하고 올곧은 글들을 남겨놓으신 명작의 주인들에게. 365일 환한 밤을 밝히는 서울 가락시장 사람들, 진솔한 글을 써보라고 다독여주시고 손잡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우리 문학의 중심권에 다가선 시조, 이제 ‘구원의 시학’으로 우뚝 서기를 기대한다. 한 번 더 소리 지른다. 여러분, 정인숙 신춘 됐어요. 또박또박 글이 새겨진다. 잘 써보라고.
 
△1963년 서울 출생 △수산물 거래 개인사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