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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19.01.01 10:36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659

[201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돌들은 재의 꿈을

최보윤

 


흔들리는 날씨를 점치는 일이었지
들개가 물고 가는 싱거운 돌 하나
생이란 매일 그 예보에
실패하는 법이라네

잎사귀 쥐었다 놓은 바람의 손금처럼
달의 무늬 되지 못한 주름진 돌들은
으스름 달 뜬 밤이면
뜬 눈으로 갈라지네

천년을 살 것인 양 견적 없이 괴로워도
뜨거운 재의 꿈을 꾸고 있어 저 멀리
한 마리 개가 오는 동안
선(善)한 피를 흘릴 거야

[심사평]

전복적 발상과 감각의 쇄신 돋보여

오래된 새로움을 찾는다. 오늘의 시로 거듭나야 오래된 정형의 지평을 새롭게 열기 때문이다. 현대시조의 당연한 전제이지만 오늘의 인식과 방향에 무감한 응모가 아직도 꽤 보여 되짚는다. 새로운 목소리를 눈여겨보면 피상성이 걸리고, 안정적 보법을 들여다보면 상투가 드러나 집었다 내려놓는 반복이 길었다.

끝까지 잡고 있던 김수형은 우리 현실 속 문제의식을 구조에 맞춤하게 앉히는 정형 운용이 돋보였다. 말을 덜어내며 압축미를 더하는 형식의 내면화를 보여준 김율관·이하루·황인선, 미국의 응모자 제이슨 리도 시조의 힘을 오붓이 담아내는 편이다. 또 강대선·김향미·정대섭 등도 발상과 감각의 신선한 조화로 눈길을 오래 잡았지만 기성 시인이라 시조에 진력할지 염려가 앞섰다. 결국 매 편 참신한 인식과 개성으로 정형의 구조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는 최보윤을 택했다.

당선작 '돌들은 재의 꿈을'은 전복적 발상과 감각의 쇄신으로 돌올하다. '생이란 매일 그 예보에/ 실패하는 법이라네' 같은 기시감 있는 문장이 새롭게 닿는 것은 '흔들리는 날씨를 점치는' 발상에서 비롯된다. '잎사귀 쥐었 다 놓은 바람의 손금처럼' 무용하나 잎을 키우는 바람과 '뜬 눈으로 갈라지'는 '주름진 돌' 같은 비유도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이면의 곤고한 시간을 담보한다. 돌들이 꾸는 '뜨거운 재의 꿈'이 착한 피를 흘려야만 꿈꾸기가 가능해진 청춘의 환기로 보이는 까닭이다.

당선을 축하하며 '돌'의 비상을 바란다. 더 외로워졌을 다른 응모자들의 뜨거운 응전도 기원한다.

 

[당선소감]

나를 쓰게 한 것은… "네 시가 좋아"라는 한마디

저는 한국이란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이 버릴 수도 부끄러워할 수도 없는 저의 출처입니다.

집이 없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어딘가 얹혀사는 느낌이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믿고 그 어떤 희망도 욕심도 없이 글을 쓰고자 했습니다. 맥락 없이 비틀대며 글을 쓰던 저에게 시조의 정형성은 아름다운 구원입니다. 형체 없이 허물어져 내리던 저의 시들이 이 율격 속에서 온전해지고 안락해졌습니다. 집이 생긴 느낌입니다. 이 새집에서 저는 울 수도 없이 설레고 있습니다. 아직 배울 것도, 들일 것도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학부 때부터 '너는 분명 좋은 시인이 될 거다'라며 격려해주신 오정국 교수님, '믿는다'고 말씀해주신 이승하 교수님, 이제야 감사 말씀 올립니다.

스무 살, 떠밀려온 언어를 견적 없이 써내려간 제가 있습니다. 그 정체 모를 언어의 조합을 '시'라고 부른다는 것을 배우고 지난 팔 년간 어떤 의식처럼 신춘문예 투고를 해왔습니다. 그 어떤 언어도 들어오지 않아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던 해에도 저를 쓰게 한 것은 고통의 견적 없음도 이 삶의 주인 없음도 아닌 한마디. 네 시가 좋아, 당신들의 그 한 마디, 한마디에 빌어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출처를 함께 사랑해 주고 인정해준 나의 당신들. 그리고 어머니 장·미·혜. 당신이 제 출처의 출처이시고, 제가 아는 모든 사랑의 기원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또 다른 버전입니다. 저는 저로, 혼자 아닌 혼자로, 이번 생도 계속해 보겠습니다.

●최보윤

―1991년 인천 출생

―중앙대 대학원 문학예술콘텐츠학과 석사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