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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 한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18.01.01 23:5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266

[당선작]

 

망초꽃 사설

박미소

 

 

모내기 끝난 논 갈아엎는 개구리처럼

울 엄마 서러움이 서성거린 강둑에서

남몰래 그러안은 밤, 물소리에 잠기고

오늘도 밝은 달이 세상을 비추었지만

혼자서 못 건너갈 넓은 강 바라보며

하얗게 쪼그려 앉아 울먹이는 그림자

다 식은 그리움이 내다버린 마음같이

버리고 싶은 기억 한 잎씩 뜯어내며

점자로 떠오른 엄마, 다시 읽는 8월에





[당선소감]

"즐거움보다는 더 큰 두려움이"


그동안 시를 쓰기 위해 삶을 절제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애달도록 시간을 쪼개고 태도와 습관을 바꾸는 일은 저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하지만 부박한 일상생활을 추슬러가며 시에 집중할 수 있었던 기억은 제 생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몸짓으로 오롯이 남아 있습니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시를 습작하는 그 시간과 고통은 식어버린 열정을 되살리는 일이었으므로, 저는 지금 그 누구보다도 아주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위하고 싶습니다.

당선 소식을 최광모 회원의 '중앙신인문학상' 시상식장에서 들었습니다. 저는 그 순간 강력한 자기력에 한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즐거움보다는 너무 큰 두려움이 부메랑처럼 날아와 오랫동안 가슴을 따끔거리게 했습니다. 막연했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으므로 혼자 감당키 힘든 현기증이 제 몸을 비틀거리게 했습니다.

당선의 기회를 주신 한라일보 관계자 분들과 큰 힘을 얻게 해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지면을 통해 그동안 함께 시심을 주고받으며 공부한 '교상학당' 시조아카데미 회원들께 미안함과 더불어 고마움을 전합니다. 그리고 "열정은 누구나 가질 수 있으나, 그렇다고 또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재능"이라고 늘 강조하신 이교상 선생님의 애정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면서도, 그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 앞으로 더욱 겸손하게 좋은 작품으로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라는 선생님의 따끔한 충고 오늘 온몸에 깊이 새겨 그 염려가 기쁨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지켜봐주며 응원해준 가족과 세월을 홀로 삼키시며 언제나 격려를 아끼지 않은 어머니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아름다운 시인으로 살기 위해서 더욱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약력 ▷본명 박경희 ▷1966년 경북 상주 출생 ▷'창작21작가회' 회원 ▷'교상학당' 시조 아카데미 회원

 

[심사평]

나열 수준 뛰어넘는 고차원적 전개 기법

모름지기 예술작품이란 제목을 설명하는 주관식 모범답안지가 아니라는 전제로, 시조 초중종장의 유기적 관계, 내용의 접근방법 등에 초점을 두고 심사에 임하였다.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중, 박혜순의 '날고 싶은 잠자리'는 일종의 간병일지로, 병실에 날아 들어온 잠자리의 거동의 기록이다. 작은 생명에 대한 연민이 돋보였으나, 전체적인 산만함과 내용의 나열수준에 머물렀다. 김순국의 '해녀콩꽃'은 참신한 소제와 시어선택이 남달랐지만, 약간의 작위적이라는 측면에서, 김월수의 '백탄의 시간'은 한 편의 작품에 땔감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담아내려는 했다. 그러나 제목에 대한 관념적 설명과 요란한 낱말들이 되레 감점요인으로 작용했다. 이처럼 응모작품 대부분이 시조가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서정성과 미학적형상화가 미약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런 와중에 박미소의 '망초꽃 사설'이 차분한 목소리로 심사위원 눈길을 멈춰 세운다. 초여름부터 가을에 이르기까지 거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피는 망초꽃이 오늘은 시인의 모습으로 심사위원 책상 위에 올라와 하얗게 웃고 있지 않는가. 시력, 어휘력은 물론, 나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고차원적 전개 기법을 펼쳐 보이는 점으로 미루어, 오랜 발효와 조탁의 과정을 거쳤음을 엿볼 수 있다. 더구나 끝수 종장에 망초꽃을 점자(點字)로 환치시키면서 엄마와 관련된 슬픔을 시조로 승화시키고 있다. 이 작품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시조만이 지니는 '결'과 음악성을 접할 수 있었던 점도 덧붙인다. 결국 심사위원 두 사람은 박미소의 '망초꽃 사설'에 당선의 꽃다발을 안겨드리기로 했다.

이참에 수상자는 물론 응모자 모든 분께 시조의 근육질 갖추기와 과감한 '밖으로의 눈뜸'을 주문하고 싶다. 시조를 마치 언어의 구슬치기로 착각하면서, 작품의 질적 하향평준화에 안주하려는 시조문단 일부의 이완된 모습들이 감지되기 때문이다. 분발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