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말
  • 시조나라 작품방
시조감상실
  • 현대시조 감상
  • 고시조 감상
  • 동시조 감상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신춘문예/문학상
  • 신춘문예
  • 중앙시조백일장
제주시조방
  • 시조를 읽는 아침의 창
시조공부방
  • 시조평론
휴게실
  • 공지사항
  • 시조평론
  • 시조평론

신춘문예/문학상

Home > 수상작품실 > 신춘문예/문학상
제목 2018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18.01.02 09:35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187

[당선작]

 

유축을 하다

박선영

 


그것도 담뱃구멍 낭자한 레자쇼파
김대리가 숨 낮추고 모유를 짜내는 곳
간접적 유륜을 밀봉해 가방에다 부치는

 

유축기 전원 켜면 몸의 고요 들끓고
맥박 뛰는 오후가 희뿌옇게 농축된다
섣불리 치환될 리 없을, 작은 사람 체온이

아이가 게워낸 하루치의 완급으로
김대리는 식탁에서 더운 김을 맡는다
내일도 출근해서 쓸 젖병들을 헹구며

 

[당선소감]

 

시조 탐구는 현실 지탱하는 힘

 

시대는 밝아져 가겠지만, 우는 아기들을 달래기 위해서는 당장의 삶을 건강히 푸는 처방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딸들에게 사자와 기린을 보여주러 다녀왔습니다. 카시트를 장착한 자동차를 타고 동물원에 가기 위해 축적해온 노력과 일상에 대한 애정을 곱씹었습니다. 근래에 유치원 재롱잔치가 있었는지, 사탕꽃다발을 들고 신난 아이와 잘 차려입은 부부가 함께 걷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보통 모습으로 살아감’에 필요한 연료의 양을 가늠하며, 기꺼이 아름답게 소비하고 싶어졌습니다.

중학교 국사 담당이시던 이우걸 선생님께 인사드립니다. 소풍날 영주 부석사 산길을 학생들과 함께 오르며 시조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듬해 봄 용지공원에서 백일장이 열렸고, 수업에 빠져도 된다는 즐거운 명분으로 참여했던 기억이 납니다. 시상이 잘 떠오르지 않아 시선을 멀리 두면 경남신문사가 보였습니다. 이렇듯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기에 오늘 이 순간도 소중히 저장합니다. 십년 전쯤 은사님께서 연락주셨습니다. 취직은 했냐, 결혼은 했냐 물으셨지만 시조를 꾸준히 쓰고 있느냐는 질문 같아서 답하지 못했습니다. 네 선생님, 열심히 살아내서 그것으로 이제야 썼어요. 늦었지만 기쁘게 대답하겠습니다. 마침 수유를 마무리하고 사회 복귀를 준비하려는 제게, 당선소식은 큰 격려였습니다. 한양대 시패 선배들과 박상천 선생님, 김용범 선생님, 이재복 선생님 감사합니다. 현실을 지탱하는 힘, 시조로 탐구해 나가겠습니다.

 
★ 박선영 씨 약력 △1984년생 △한양대 국문과 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재직 중
 
[심사평]
 
직장맘의 고달픈 삶 시조에 잘 녹여내
 
시조 700년 위의를 기리고 내일의 한국문학을 이끌어 갈 신인들의 장을 펼치면서 심사위원의 마음은 두근거렸다. 언제나 그렇듯 기성의 문법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빛깔을 가진 시인을 기대하는 마음 때문이다. 신춘문예의 목적은 무난히 질그릇을 빚는 장인을 뽑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에 시조가 어떻게 기능하고 새로운 물음을 제시하는 시인을 가려 뽑는 것이다. 오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일을 기약하며 함께 걷고 싶은 동반자에게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을 떠나지 않은 작품은 ‘획을 긋다’, ‘사이’, ‘유축(乳蓄)을 하다’ 등 3편이었다. ‘획을 긋다’는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하는 간절한 시선이 눈길을 끌었다. 그 지난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과 선을 긋고 운명하는 별똥별과의 상관관계를 그려내었다. ‘사이’는 지금 현재, 극복되지 않는 사람과 사람과의 간극이 높은 벽이 되는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4수로 엮어가는 힘이 좋았으며 자유로운 변주도 상당한 습작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획을 긋다’는 마지막 3수에 와서 다소 힘에 부치는 느낌을 주었다. 첫 수 종장의 “무얼까 별똥별이다 운명했군. 별 하나”에서 폭이 큰 음률의 변화를 주었고,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끝까지 긴장감을 견지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사이’는 활달한 보폭, 시원한 전개 등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시조 본연의 축약, 탄력적 음보처리 등에서 미숙함을 드러내었다. 특히 한 작품 속에서 ‘사이’란 단어가 여섯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된 것이 결정적인 흠결로 지적되었다.

당선의 영예는 ‘유축(乳蓄)을 하다’에 돌아갔다. 한 맞벌이 부부의 일상을 통해 떠안을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고통을  담담히 적고 있다. ‘일과 육아’라는 부담을 안고 일상의 쳇바퀴를 돌아야 하는 커리어우먼의 삶을 시조로 잘 녹여내고 있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으나 미래를 기약하는 의미에서 올해의 당선작으로 민다.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이달균·장성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