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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등록일 2017.01.02 10:4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798
[당선작]
 
막사발을 읽다
송가영(본명 송정자) 


너만 한 너른 품새 세상천지 또 있을까 

먼 대륙 날고 날아 난바다도 건너갈 때 

태산도 품안에 드는 은유를 되새긴다 

털리고 짓밟히고 쓸리기도 했을 게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친구가 되지 못해 

바람에 말갛게 씻긴 꽁무니가 하얗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가벼운 너의 행보 

새처럼 구름처럼 허공을 떠돌다가 

양지 뜸 아늑한 땅에 부르튼 생을 뉜다 

그리하여 정화수에 묵은 앙금 갈앉히고 

눈빛 맑은 옛 도공의 손길을 되짚으면 

가슴에 불꽃을 묻은 큰 그릇이 되느니

 
[심사평]
 
새로운 발화… 표현 밀도 높고 대상·심상 결속력 뛰어나
 

‘틀의 변화’는 시대의 화두다. 하지만 시조의 길은 좀 다르다. 선험의 틀을 지키되, 그 속에서 갱신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율 속의 자유, 균제 속의 자재를 이야기한다. 관건은 대상에 대한 낯선 관점, 새로운 해석이다.

        

▲ 심사위원 박기섭(왼쪽) 시인, 이근배 시인.

숙독 끝에 세 편의 작품이 선자의 손에 남았다. 세 편 다 시의 발화가 새롭고, 시상을 밀고 가는 힘이 좋다. 장윤정의 ‘뭉크의 오후’는 뭉크의 절규 이미지에 노숙의 풍경이 겹친다. 종장의 밀도를 초·중장이 받쳐 주지 못한 게 흠이다. 정영희의 ‘어름사니’는 꽃과 어름사니의 비유를 통해 빛과 어둠의 경계를 짚고 있다. 문제는 시어의 반복이 시상의 전환을 막는다는 점이다. 두 편을 내려놓자 마지막 남은 작품이 송가영의 ‘막사발을 읽다’다. 이를 으뜸자리에 올린다. 

‘막사발을 읽다’는 전통의 재해석인 동시에, 처연한 생의 서사다. 막사발의 “은유” 속에 “털리고 짓밟히고 쓸”린, 또 그렇게 “부르튼 생을 뉜다.” 세상에 이보다 “너른 품새”를 가진 그릇은 없다. 막사발은 막 썼다고 막사발이다. “바람에 몸을 맡긴 가벼운 너의 행보”에서 그런 편모가 드러난다. 그러나 “양지 뜸 아늑한 땅에” 묻혔다 깨어나는 순간, 막사발은 더이상 막사발이 아니다. “눈빛 맑은 옛 도공의 손길을 되짚”는 무심의 그릇이요, “가슴에 불꽃을 묻은 큰 그릇”이 되는 것이다. 표현의 밀도가 높고, 대상과 심상의 결속이 뛰어난 작품이다.

정진희의 ‘노랑돌쩌귀’, 서희의 ‘첫 번째, 한 끼’, 고부의 ‘겨울 구강포’, 이윤훈의 ‘파라다이스 풍경’, 나동광의 ‘강물수업’, 이예연의 ‘허물’ 등은 최종심의 무대를 빛낸 가작들이다. 우리 곁에 온 또 한 사람의 시인을 박수로 맞으며, 모든 투고자들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박기섭 시인, 이근배 시인
[당선소감}
10여년 인내의 보상… 명품 한복 짓듯 명품 시조 짓겠다
 

신춘문예라는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서기로 마음먹은 것이 어언 10여년. 최종심에 다섯 번을 올랐지만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한 그 시간은 어쩌면 희망고문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심사평에 이름이라도 오르지 않으면 능력의 한계를 탓하며 포기라도 할 텐데 감질나게 이끄는 신춘문예의 유혹은 쉽게 끊기 힘든 마약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받게 된 당선 통보는 그 인내에 따른 보상이라는 생각에 주체 못할 눈물이 흘렀습니다. 

수십 년 동안 가장 역할을 하면서 한복을 지어 왔습니다. 옷감을 고르고 마름질을 하고 정성껏 바느질을 해가면서 언젠간 꼭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입을 분을 생각하며 한복을 만들 때의 정성으로 시조 문장도 한 땀 한 땀 떠갈 때 마음은 차분해지고 경건함과 행복감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한복을 짓는 일은 시조를 쓰는 일과도 같습니다. 글감을 고르고 시어를 다듬고 장과 장을 마무르는 일이 옷을 짓는 과정과 흡사하기도 하고, 우리 고유의 멋과 얼이 살아 있다는 점에서도 일맥상통한다 하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점에서 제 자신을 명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한복장이에서 글쟁이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신 서울신문과 심사위원 선생님께 마음을 다해 큰절 올립니다. 또 묵묵히 지켜봐 준 성규 어멈과 사위, 아들 윤정과 윤현, 두 며느리에게도 예쁘게 살아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특히 나이는 숫자도 아닌 단어에 불과하다며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채찍질하며 이끌어 주신 임채성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우리 몸에 꼭 맞는 명품 한복을 짓듯 사람들의 가슴에 남는 명품 시조를 짓는데 남은 생을 바치겠습니다.

▲1943년 전북 김제 출생 ▲중앙시조백일장 장원(2011년 9월) ▲신사임당예능백일장 장려상(4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