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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8년도 경상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17.12.31 22:46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145

[당선작]

 

옥봉洞 세한도

김수환

 

 

동네 점집 댓잎 끝에 새초롬한 간밤 눈
먼발치 새발자국 저 혼자 샛길 가고
귀 닳은 화판 펼치고 바람이 먹을 간다

 

전봇대 현수막보다 더 휘는 고갯길을
리어카 끌고 가는 백발의 노송 한 그루
수묵의 흐린 아침을 갈필로 감고 간다

 

맨발의 운필로는 못 다 그릴 겨운 노역
하얀 눈 위에서도 목이 마른 저 여백
누대를 헐고 기워도 앉은뱅이꽃 옥봉동

 

 

[당선소감]

 부끄럽고 아프지만 즐겁고 행복한 글쓰기

 글쓰기가 위로가 됐다는 말을 한동안 믿지 않았습니다. 저 치열하고 힘든 작업이 어떻게 즐거울 수가 있겠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글쓰기는 위로가 될 뿐 아니라, 힘들고 부끄럽고 아프기도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일임을 압니다.

 시 쓰기도 어렵고, 시조 쓰기는 더 어렵습니다. 시도 돼야 하고 시조도 돼야하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시의 사지를 자르고 변형 시켜서 시조라는 틀 안에 맞춰 넣어야 하고, 그래도 시가 멀쩡하게 살아 있어야 하고, 오히려 더 좋아져야하는 것이 시조입니다. 짧게는 석 줄, 대체로 열두 줄을 넘지 않는 짧은 글 속에 고통과 소외와 결핍을 우리 고유의 리듬으로 직조해내는 시조가 저는 참 좋습니다.

 “‘이 세상에서...’라고 말하기 시작하면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그 뒤를 ‘제일 그리운 것은’이라고 해도, ‘제일 외로운 일은’이라고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중에서 제일 서러운 것은 ‘이 세상에서 네가 제일 좋다’라고 말할 때입니다. 제일 좋은 것은 언젠가는, 틀림도 없이, 이 세상에서 제일 아픈 일이 될 것 같아서 여태 말하지 않고 소중하게 숨겨왔습니다.” 2011년 3월에, 언젠가 제가 당선소감을 쓰게 되면 아내에게 하리라고 적어두었던 말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게 해주신 경상일보와 심사위원님, 부모님, 저보다 저를 더 걱정해주시는 최영효 선생님, 제가 깊이 아껴둔 이름 유홍준 시인께 큰절을 올립니다. 항상 제게 곁을 내주시는 김성영 시인, 김남호 시인과 푸른 시교실 도반님들께도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약력
-1963 경남 함안 출생
-중앙시조백일장 장원, 차상
-MBC 아름다운가사공모전 대상

 

[심사평]

 

녹록지 않은 삶의 현장 시적정황으로 환기

 첨단정보화 시대에도 글은 여전히 생산되고 있다. 글 없이는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문학 갈래 중에 ‘왜 하필이면 시조인가?’라는 문제를 제기 하는 이들이 지금도 적지 않다. 이는 시조가 우리의 유전자와도 같은 것임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우리의 호흡과 정서와 사상과 감정이 오롯이 실린 4음보 가락은 핏속을 면면히 흐르고 있어서 부정하고자 하여도 부정할 수가 없다.

 시조를 통해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답해야 한다. 우리가 처한 환경 즉 당대 역사와 현실을 적극적으로 노래해야 한다. 그렇기에 각고의 노력과 치열한 천착이 필요하다. 전통적 형식과 현대적 감각이 만나 독보적인 시조 세계를 여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응모작 중에 ‘과일나무는 제 그늘이 지면 안 돼요’와 ‘사람이 비만해지는 것처럼 농사도’라는 장은 구 개념을 인지하지 못하고 쓴 경우다. 전구 뒤 마디와 후구 앞마디가 엮여 의미를 형성하고 있다. 이 구절들은 소리 내어 읽어보면 자연스럽지가 못하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수가 있다. 기초부터 다져야 할 것이다.

 최종심에 오른 13인의 작품을 긴 시간 동안 살폈다. 그 결과 끝까지 남은 ‘꼬투리’와 ‘욱’ ‘노크’ ‘옥봉동 새한도’ ‘마가렛, 마리안느’를 두고 검토를 거듭했다. ‘꼬투리’와 ‘욱’은 같은 이의 작품인데 참신한 점에서는 가장 돋보이지만, 제목이 된 시어가 작품 속에 지나치게 많이 등장하고 있는 점이 흠결로 보였다. 앞으로 좋은 작품을 쓸 소양이 엿보인다.

 ‘노크’는 중년을 보내는 이의 건망증을 실감실정으로 보여주고 있으나, 이미 이러한 소재는 비근하고 많이 낯익다는 점에서 새로움이 덜한 작품이다. 끝으로 같은 이의 작품인‘옥봉동 새한도’와 ‘마가렛, 마리안느’에 대해 고심하다가 상대적으로 밀도 높게 직조된 ‘옥봉동 새한도’에 손을 들어주었다. 이 작품은 삶의 현장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것을 여러 소도구가 배치된 시적 정황을 통해 환기한다. 또한 서예 용어인 ‘갈필과 운필’이라는 시어가 적재적소에 놓여 시의 분위기에 미묘한 긴장감을 더하고 있고, 정치한 미학적 구조로 형상화된 과정이 흠잡을 데가 없다. 앞으로 이 영광에 값하는 진경의 세계를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아쉬운 면은 도발적인 작품이 눈에 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신인이라면 실패 여부를 떠나 도전적인 시 세계를 보여줄 만도 한데 시각이 대체로 주변 일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목소리의 출현’만이 개인의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시조문학을 보다 융성케 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약력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별인간> <에워쌌으니> <휘영청>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