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石花, 그 에피그램 -이수이 박물관 뒷마당엔 지지 않는 꽃이 핀다 언 손을 비비며 온 새벽녘 그믐달이 돌탑 위 널린 통점을 조심스레 들추고 더께 걸친 저 남루도 저문 날엔 날개라서 주저 없이 걸쳐 입자 쓰여지는 상형문자 초록빛 눈먼 시간이 점자처럼 번지고 사람은 그 누구나 외로 선 작은 돌탑 끊임없는 비바람에 이름조차 잊혀도 한구석 우뚝 선 채로 꽃 피우며 살고 싶다
「 경북 영양 출생, 영양 문화원 백일장 산문부 장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중.
」 황태, 몸을 풀다 -이종현 바닷속 기억들을 갑판 위에 부리고 비릿한 언어마저 얼음 속에 쟁였다 내설악 입적하던 날 눈꽃이 한창이다 파도에 몸살 앓던 흔적을 끌어안고 횡계리* 들어설 때 사나워진 눈보라 속울음 덕장에 내걸고 묵언수행에 들다 실눈 뜬 봄바람에 산문 밖 훔쳐보다 고의춤 뒤적이며 잔 가득 목젖을 적신, 속 쓰린 사내를 만났다 콩나물에 몸을 풀다 * 횡계리 : 강원도 평창의 황태 덕장 할미꽃 -김정민 지난해 힘겨웁다 머리 풀고 가시더니 봄볕이 근지럽다 담 아래 슬쩍 오셔 자식 줄 멥쌀 한 그릇 고이 품고 졸고 있네 걱정도 불안도 잠시 놓고 꽃을 보는 4월. 목련과 벚꽃을 보내고 나니 연산홍과 철쭉이 또 왁자하다. 그것을 이은 것인가. 이 달 당선작들도 꽃들로 화사하다. 장원은 이수이의 ‘석화, 그 에피그램’이다. 박물관 뒷마당 돌탑에 낀 초록빛 이끼를 “지지 않는 꽃”으로 명명하였다. 탑은 영원히 죽지 않는 부처님을 모신 집, 부처님은 그 깊은 곳에서 오랜 세월 “돌탑 위 널린 통점”으로 내려앉은 사람들의 간절함을 읽는다. 그리하여 석화로 진리와 자비광명의 에피그램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유의 폭이 넓고 말의 직조 능력도 예사롭지 않다. 차상은 눈꽃을 배경으로 깔아놓은 이종현의 ‘황태, 몸을 풀다’로 정했다. 먼 바다에서 잡혀온 명태가 강원도 횡계리 덕장에서 황태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의인화하여 잘 묘사했다. 그런데 첫째 수와 둘째 수에서 이끌어낸 긴장감과 숙연함이 마지막 수에 가서 힘을 잃고 말았다. 시조의 힘은 각 장에서는 종장, 각 수에서는 마지막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차하는 김정민의 ‘할미꽃’이다. 꽃자루가 굽고 열매 겉을 덮고 있는 길고 하얀 털이 꼭 머리를 풀어헤친 할머니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할미꽃. 발상의 신선함은 없으나 끝없는 모성을 “멥쌀 한 그릇”으로 본 눈썰미가 좋았다. ‘벚꽃, 석별’의 정호순은 1편만을 보내와 아쉬웠고, 몇몇 투고자들은 시조의 형식을 갖추지 못해 안타까웠다. 김영순, 김홍유, 노경호의 작품은 마지막까지 겨루었다. 시조시인 강현덕(대표집필), 서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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