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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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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애영 시조집 <한밤의 네모상자> 등록일 2023.01.07 14:46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27

네모상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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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영

목포 출생. 2010년 《시조시학》으로 작품활동 시작.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2016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정형시집 『모서리 이미지』, 『호루라기 둥근 소리』, 『종이는 꽃을 피우고』, 시집 『나의 첫 사과나무에 대한 사과』, 공저 『한국해양문학상수상작품집』 발간. 제4회 김상옥백자예술상 신인상, 제5회 백수신인문학상, 2020 한국여성시조문학상, 제26회 한국해양문학상대상 수상. 2020년 인천문화재단문학창작지원금(시), 202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학창작지원금(시조)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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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배聖杯처럼 돋아난 화석


웰위치아* 맨살 속엔 첼로 소리가 새겨 있다
저항도 장식도 없이 눈물처럼 싱싱한
하늘 눈 가닿고 싶은 풀벌레 선율도 담고

사막을 가로지른 거대한 두 개의 잎
사마리아 여인의 울음을 잠재우듯
마주 본 별과의 수수만년 성배聖杯처럼 돋아난다


* 나미비아 사막의 고생대 식물.



코피노*가 등장하는 무대


땅콩을 팔고 있는 13살 라이언 제이
아픈 어머니 대신 가장의 역할이다
속울음 머금고 있는 엑스트라 표정 같다

바콜로드 빈민촌에서 우물물을 기르고
내 성은 코피노예요 당당하게 외친다
슬픔이 자꾸 길어져도 내일 향한 오늘일 뿐

아직도 매달려야 할, 하루 치 아득한 분량
손끝에 부르튼 이방異邦 그 끝을 잡지 못한
일용직 싱싱한 대사 파도의 벽 넘고 있다


*kopino : 한국인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필리핀 여성의 자녀.



빌레못* 진달래


아침에 떨어진 꽃잎
봄밤이 줍고 있네

그 동굴의 안부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면
속울음 켜켜이 품은 주상절리라 부르겠네

아름아름 피워냈건만
속수무책 짓밟힌 꽃

무자년 지나온 울혈, 몸이 몸을 돋우네
극한은 끝남이 아니라
더 뜨겁게 돋는 애채

하늘은 어느 못에 저 많은 질문 감췄을까
화덕과 깨진 무쇠솥
아이 안은 엄마의 유골

불 밝힌 저 풍등을 향해
달, 하나 옮겨보리


* 제주 4.3 유적지.



도서관



나무들은 흔들리며
소리를 복사한다

꽃잎들의 필사는
늘 나비의 일이기에

대출된 바람과 구름
페이지만 넘긴다

구석엔 칩거에 든
장자의 길이 있고

서책의 수천 문이
빼꼭히 꽂혀있는 벽

제목들, 눕지 못하고
삼동을 견디고 있다



견우성



허술한 거푸집
공약들이 난무하던 밤

마른 철쭉 물을 주며
견우노옹牽牛老翁을 생각했다

숨진채
꽃이 된 방호복 사람들
은하가
비추고 있다



소소한 울림에 관하여



1. 비

차창 위의 스타카토 씻김굿의 절정 같다
두 손으로 손사래 치는 와이퍼의 몸부림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
차고 슬픈 방울 소리

2. 쉼

물숨은 숨이 아니지 멈춰야 살 수 있지
물안경 쑥 이파리 씹던 껌 뇌신 한 갑
버텨온 삼춘 숨비소리
맑게 뜨는 우도 하늘


3. 물

달맞이꽃 환히 두고 걸어가는 뒷모습
만해는 구름을 딛고 설악 무산霧山 마중 간다
백담의 물소리 남기고
벌레울음 걸머쥐고



를 찾아간다는 것



지나온 걸음만큼
길은 점점 아득하고

꽃들이 피고 져도
아무런 화답도 없다

긴 봄밤
지고 간 몽돌
내 안의 비문이다



한밤의 네모 상자



자꾸만 쌓여가요 내 안의 무게들
난해한 비밀번호는 네모 칸을 자꾸 만들고
이제는 아파트로 부풀어
양어깨를 누르네요

급작스레 내쳐져요 과부하 읽지 못해
때로, 거꾸로 걸린 들꽃처럼 남겨져도
거절도 승낙도 할 수 없는
내 뇌리 속, 검은 사막

부동의 은유隱喩라도 신록은 찾아오지요
산수국 흩뿌려서 밀폐의 시간 드러내면
신새벽 창밖의 시어詩語
새들이 채록할까요



징소리



채끝으로 내리칠 때 자운영이 피었다

인왕산이 검게 울고
녹비로 채워졌다

융릉隆陵의 귀면와 누각
놋쇠달이 자랐다


*사도세자 능.



고흐의 가죽 나막신*



누가 신고 떠난 걸까 신발 속 쓸쓸한 무게
투박하게 접힌 결, 노동의 페이지인 듯
한 생의 발자국을 위한
저리 평평한 각도

귀에 갇힌 저녁별이 그대 옆에 누울 때
밀밭이 순간 환해지기도 했을 거다
달처럼 단단한 속살
새 울음도 다 받아 주는

풍차의 바퀴살로 휘도는 바람소리에
바닥과 굽의 중심, 키우는 걸 이제 알겠다
자갈길 뚜벅뚜벅 가는
이물이 없는 존재여


* 1889, 고흐의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