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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김춘기 시집 <아버지 버킷리스트>
등록일
2023.01.07 15:46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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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금호시조상 우수상
2002 공무원문예대전 시조부문 우수상
2008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09 한국
교육신문 교원문학상 시부문
2010 강원문학 신인상 시 당선
2010 공무원문예대전 시부문 우수상
2015년 제주도로 이주
2022년 대정현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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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설악산
설피 신은 시베리아기단
산을 밀며 달려온다
계곡은 수온 모두
빙점
氷點
아래로 내려놓고
눈감은 대청봉 마루 동안거에 잠겨있다
한 장 남은 속옷도 벗어
맨살뿐인 저 고드름
극한의 수행이다
하늘 한쪽 떠받치고 있다
시퍼런 어깨 언저리 바람마저 얼어붙는다
하늘 벼랑 그 아래로 추락하길 마다않나
수정보다 투명해지려
임계점 넘는 빙폭
氷瀑
암벽을 타고 오르는 눈보라도 숨 가쁘
다
강아지풀
제주 똥강아지들
섭지코지에 다 모였다
삽살개 동경이
쌀강아지 토종불개
은구슬 아침 눈망울 조롱조롱 매달고서
머리는 안 보인다
보이는 건 온통 꼬리뿐
종일 짖지도 않고
가을 하늘 젓고 있다
지중해
구만리 떠돌던 난민들이 식사 중이다
제주백서향
1.
꽃샘잎샘 밀어낸 한수기오름 구릉
제주백서향 꽃내음이
물안개처럼 피는 숲속
배풍등, 댕댕이덩굴 눈 감고 코만 연다
새벽부터 그 곁에서
흠흠거리는 노루 가족
남실바람 불러모으는 녹나무, 조록나무
금창초, 구름조개풀도 가족으로 모여있다
2.
곶자왈은 에덴동산 태초 천연 향수 공장
영업사원 팔색조
섬 하늘 날며 지저귄다
메이드 인 제주 토종, 벤처 기업이라고
아버지 속울음
우리 집 토종 칡소 새끼 낳았습니다
백일 지나 젖 뗀 송아지 우시장에 갔습니다
어미 소
꺼멍 두 눈은 호수가 되었습니다
연체이자 독촉장에 밤 지새던 아버지
여물에 콩을 넣어 쇠죽 끓이십니다
줄담배
피우시면서 매일 끓여 주십니다
뿔
훈이네 황소는 람보 뿔 곱게 달고, 남진이네 사슴은
왕관 뿔 쓰고 산다
그 뿔은 초식동물의 총이면서 방탄조끼
하지만 그것은 살신병기가 아니다 그들 헌법 1조는
뿔로 먼저 공격 않기
사슴은 제 뿔을 키워 주인을 보양한다
사람들도 저마다 뿔 하나쯤 달고 산다 형님 뿔은 울음
이고, 동생 뿔은 옹고집이지만
아버지, 울 어머니는 그 뿔조차 버리셨다
밥상
1.
생일날
두메 아랫목 저녁 식사 시간이다
어머니는 내 수저에 고기반찬 올리신다
철없는
강아지처럼
넙죽넙죽 받아먹는다
2,
오늘은
의정부 집 식구 모두 무릎 꿇고
맑은술 고기산적 두리기상에 올린다
어머니
첫 기일이다
은하수로 밥상 보내고 싶다
아버지 버킷리스트
1.
천직 농부 아버지
평생 자식바라기
단, 한 가지
버킷리스트
비행기 타보시는 것
췌장암 입원하시던 날
말씀 슬쩍 흘리셨다
2,
일전, 호스피스 병동
나와 눈 맞추시고는
전용기
병상에 누워
이륙 준비 중이시다
천상의 백조를 타고
우주여행 하시려나 보다
(주) 21세기과수원
황사 짙은
근교 농장
차량 경적 거름 삼아
홍로 사과
먹골배가
옹골차게 익어간다
길 건너
강변 언저리엔
입 열고
죽은 농약병들
폐선
삼십 년 된 트롤선이
모래톱에 노숙 중이다
나사 풀린 스크루와 소리 꺾인 엔진들
태평양 밤별 해역이
젊은 날 고래실이던
만선 갑판 춤추던 어깨
적도 해류 갈매기 교향곡
웃음 만평, 여유 만평, 배포도 만평이던
숙부
한겨울 외항 방파제 위
낚싯대에 걸려있다
서울 크레바스
전깃줄 서로 엉킨 남대문로 뒷켠
담배 연기 흐느끼며
거미줄을 감고 있다
빗금 간
바람벽 틈새로 힐튼호텔 보이는 곳
대상포진처럼 번지는
통증 겹친 협곡엔
아이젠조차 없는
경사 급한 빙벽뿐
고시원
쪽방 골목은 자본주의 크레바스
세탁기
지하 달방 화장실 곁
중고 늙은 세탁기
자정 지나 쿨럭쿨럭
목이 잠겨 돌더니
오늘은 엔진소리도
일시 숨을 끊었다
어둠 한켠 그 속에서
혼자 우는 것일까?
봄날, 꽃비 따순 햇살
밤새 꿈꾸는 걸까?
진폐증 가슴 결리는
난곡동 외톨이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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