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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한병윤 시조집 <봄은 땅 밑으로 온다> 등록일 2023.01.11 12:18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16

땅밑.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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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병윤

1989년 월간 <동양문학> 시 부문 신인상에 당선되며 문단에 등단했다. 시집 <쉼표> <발걸음>, 시조집 <빛줄기에 피는 아침> <겨울 마라도에서> 등이 있다. 현재 울산문인협회, 울산시조시인협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시조문학협회, 한국공무원문학협회 회원 등으로 활동 중이다. 시조집은 울산문화재단의 ‘2022 울산예술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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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로등


전봇대가 단단하게
전선줄을 물고 있다
생명체의 핏줄처럼
흐르는 빛의 전류
응고된
어둠의 무지를
쓸어 내는 빛줄기


접시꽃 가로등이
조화造花로 피고 있다
길 따라 마을 따라
졸지 않는 파수꾼
부나비
불빛 아래서
넋을 사룬 춤사위


동백꽃


청록수 잎잎에
냉침 놓는 겨울바람
알불처럼 타는 요염
사릿문을 열어 놓고
빨갛게
타는 사랑을
꺼내 펴는 섬아씨



화장을 하는 아내1



나무는 속살 안에
나이테를 그려 넣고
세월은 사람에게
주름살을 새긴다
누구도
지울 수 없는
구겨 새긴 자국을


상처 없는 이 흉터에
아픔도 몰랐거니
거울을 마주하면
스무 살이 그리운지
톡톡톡
분첩을 두드리며
주름살을 덮는 아내



골동품


할말을 꾹 삼키고 침묵하며 앉아 있다
뜨겁던 숨소리는 아직도 살아 있고
봉노*에 활활 핀 알불 정도 소록 타고 있다


할머니 불손 쥐고 재 톡톡 다독일 때
숨겨논 알밤 몇 놈 노랗게 익어 가고
창호문 앞마당에는 안부처럼 눈이 온다


켜켜이 쌓인 먼지 조근조근 얘기한다
그날의 변명 같은 붉은 녹물 슬어 있고
꺼졌다 다시 눈 뜨는 불씨 같은 사락눈


* 숯불을 담아 놓는 화로의 옛말.




늙은 형광등


늙은 형광등이
가끔씩 껌뻑일 때
한두 번 잊는 생각
그 수가 자주 올 때
의사는
확진을 내린다
건망증이 오는 중




발자국


걸어온 삶의 길이 진창으로 질퍽대도
언제나 뒤에 있는 발자국을 돌아보면
원망의 눈빛도 없이 침묵으로 앉아 있다


앞서간 사람들이 남기고 간 발자국
황톳길 조대흙에 탁본 짝힌 흔적들
빛나는 진리의 길은 정금처럼 남아 있다




물레방아


가슴에 담은 물을 쏟아 내는 버거운 삶
틈새마다 물이끼가 파랗게 눈을 뜨고
세월이 걷는 발걸음 영상으로 돌고 있다


일상이 반복되는 체험의 학습장
살 질긴 산바람이 물소리를 밀고 가고
빨갛게 익은 단풍은 물살 따라 춤춘다


물소리 방아 소리 바람 소리 가을 소리
좌르르 그 소리에 부서지는 시간들
세월이 물레방아에 걸려 나이테를 새긴다



홍매화


봄 햇살 바늘귀에 홍실을 꿰어 들고
누이의 치마폭에 땀땀이 뜨는 무늬
갑자기 바람이 불면 붉은 꽃비 쏟겠다




겨울 과수원



잔가지 솎아내고
소득을 셈해가며
열고 닫는 가위 입이
야무지게 일기 쓴다
선별된
소망의 꽃눈
겨울 온기 감는다



태화장 풍경


태화장 난전에는 5일장 벅적인다
어린 쑥 냉이 달래 음나무 새순들이
산내댁 소쿠리 안에 오도카니 담겼다

새봄이 왔는데도 우리들 마음속엔
아직도 시베리아 얼음 언 동토 같다
조금씩 정을 떼 팔아 온기 지펴 간다면

길 커피 한 잔으로 또 하루가 즐겁단다
초록빛 가랑파에 덤으로 웃음 얹고
고등어 눈빛 렌즈느 세상 한 컷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