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
아이디/비밀번호찾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강영임 시인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등록일
2023.06.10 14:39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626
-------------------------------
강영임
서귀포 강정 출생
2022 고산문학대상 신인상
--------------------------------
백발
전신주 구멍에 둥지 튼 부부딱새
새끼들 먹이느라 쉼 없이 날아든다
저러다 과부하되어 몸 하나 버리겠네
손 귀한 집 대 이으려 스물둘에 장가들어
아들 하나 내리 딸 넷 거느린 버팀목
땀방울 조랑조랑 엮어 짜디짠 소금쩍
오남매 줄줄 나간 친정집 둥지에는
하얗게 소금꽃 핀 아버지가 계신다
까맣게 지나간 세월, 저리도 눈부신가
간출여
숨었던 바위는 비닷물이 밀려나면
물 밖 세상으로 제 모습을 드러낸다
은밀히 옷으로 덮인 당신의 등처럼
아물고 덧난 자리 흉지다 굳어지듯
오십여 년 쏟아지는 세상의 부하들을
오롯히 굼뜬 등으로 받쳐내던 옹벽 하나
희멀건 런닝 속에 툭 불거진 매밀함이
어느 날 문득 기억 속에 쏟아질 때
물 위로 솟아오른 등이 어혈 맺듯 붉어진다
헛이라는 말
'헛'이라는 접두사에 슬픔이 묻어
난다
헛구역질 헛꽃 헛기침 헛웃음
그 자리 주인이면서 주인이 아닌 듯
어긋난 대답처럼 삼키지 못한 시간은
무성화 꽃잎에 적막들로 내려앉아
이십 년 홀로 앉아서 울음을 퍼 올린다
얼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는 빙점처럼
당신을 향한 마음 어디쯤에 있을까
길고 긴 방하기에 갇혀 듣지 못한 봄의 소리
플랫폼
검은 봉지 오일장에서 기운 빠져 파닥댄다
빠글하게 말아 올린 퍼머기는 오간 데 없고
정수리 흰 종지 올린 듯
하얗게 부서진다
도도하게 흐르던 스무 살의 붉은 피는
차디찬 살갗 아래 거멓게 식어버려
아무도 찾는 이 없는
이름만 남겨진 역
넝쿨째 뻗어가는 잎사귀에 등꽃 피듯
미래가 끔틀대며 온몸에 피 돌린다
봉지에 환한 꿈 담고
함지박처럼 웃는 그녀
선물
놓을 수도 잡을 수도 없어
곪아터진 이 먼지
인연 없는 사이 앞에
다독이는 보름달
문지방 넘어들고서 홍시처럼 발갛다
거미줄
오래된 책 들추다 납작 누른 꽃잎 몇 장
희미한 입술자국 몰래 감춰둔 듯
그 빛깔 바래다 못해 곱게 입은 나무색
느닷없는 햇살에 꽃술들이 피어나
분홍장미 한 송이 두고 간 그 사람
여름내 거미줄처럼 손바닥에 끈적인다
검버섯
내 마음 받아 달라 안달복달 치대다
신발 뒤축 닳듯이 쪼그라든 중성자별
블랙홀
스러진 별들
손등에 박혀 있는
원석
原
石
날마다 동굴에
박쥐치럼 매달렸지
종이를 통과한 빛
한 가닥 붙들려고
해질녘
시루떡 처럼
쌓아올린
슬픔들
자작나무 섬*
주위를 둘러봐도 숨구멍이 다 막혔다
들숨 날숨 들고나야 초봄에 잎이 돋지
사할린 꽁꽁 언 바다 생각까지 봉하고
고향이 어디인지 조국이 어디인지
동토 끝 징용 왔다 눈물조차 얼어붙은
무국적 떠도는 바다
제 온몸을 염한다
* 사할린을 아이누인 말로 표현
지문, 혹은
어깨를 들먹이며 온도 잃은 생들이
뭉그러진 지문 돋듯 호적중초* 깨어나
종잇장 사이사이로 소태같이 절은 땀내
* 대정읍 안성리 대정현 기록전시괸에 전시된 조선시대 호적대장
목록
수정
삭제
쓰기
다음글 |
하순희 시인 <청자화병>
이전글 |
이소영 시집 <두근두근 우체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