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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3 조선일보 시춘문예 시조 당선작 등록일 2023.01.02 10:26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809

[2023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백련의 기억

 

유진수

 

 

봄날 햇살 아래 눈물처럼 쏟은 말들,

천천히 번져가다 물비늘처럼 글썽인다.

희미한 표정만 남긴 채 수척해진 문장들.

 

수런대던 그때로 하염없이 돌아가서

두어 대 솟은 꽃순 차랑차랑 만난다면,

밝고도 환한 눈길로 글을 다시 쓰리라.

 

흰 빛깔 떨군 꽃이 하늘로 돌아간 후,

뜨락에 젖어 있던 별빛 같은 글자들이

눈부신 백련의 말씀으로 살아나던 그 순간.


 

[심사평]

 

참신한 비유, 묘사의 정제백련을 새롭게 느끼게 해

 

긴 입마개 시절을 뚫고 온 응모작들 앞에 문학의 일이 새삼 짚인다. 팬데믹에 가중된 현실적 압박들이 쓰기의 궁리를 더 다양하게 불러낸 듯하다. 그런 고투의 발화들 중에도 자신만의 시적 발명을 펼쳐갈 법한 확장 가능성에 비중을 두며 응모작들을 거듭 읽었다.

 

고심 끝에 가려낸 당선작은 백련의 기억이다.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회색인’ ‘석류가 비명을 지를 때’ ‘MBTI’ ‘신림역에서’ ‘바람의 일등이었다. ‘회색인은 현대 도시인의 일상 속 실존 탐색이, ‘석류가 비명을 지를 때는 당대의 외곽과 소외를 읽는 문제의식이, ‘MBTI’는 청춘들의 현실과 정형의 조화가, ‘신림역에서는 지금 이곳의 실상 묘사가, ‘바람의 일은 소소한 발견을 여미는 보법이 돋보였다. 하지만 동봉한 작품들을 다시 읽는 동안 엇비슷한 인식이나 발상 그리고 진술의 과잉 같은 면들이 걸렸다. 다른 작품에서도 정형성의 구조화를 균질감 있게 보여준 백련의 기억이 살아남게 된 연유다.

 

백련의 기억은 명징한 이미지와 묘사의 정제가 오롯하다. 참신한 비유들은 백련이라는 낯익은 대상에도 단아한 새로움을 발생시킨다. ‘희미한 표정만 남긴 채 수척해진 문장들에 아취와 생기를 부여하는 힘이다. 정형의 전제인 구()와 장()을 네 마디 율로 아우르는 정공법에 충실한 운용임에도 환한 생기와 여운을 일으킨다. ‘꽃순에서 차랑차랑나아가는 노래의 감응으로 백련의 눈부심을 더 오붓이 열었다. 다만 너무 익은 서정의 느낌은 오늘의 감각으로 쇄신해가길, 바람을 덧붙인다.

 

유진수씨의 당선을 축하한다. 아울러 응모자들의 새로운 시적 영토의 확장을 기대한다.


 

[당선소감]

 

끝없이 끼적이고 고쳤다 드디어 한 걸음 나아갔다

 

어릴 때부터 문학이라는 녀석과의 많은 접촉은 나에게 제법 큰 여운을 주었고, 어느 날 나는 시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버스 창가에 앉아 휴대전화에 적어댔던 단어들과 문장들을 바라보면서,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해 번뇌하였다. 하지만 새로움을 써가는 일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했고, 나는 어느새 나의 세계를 구축해가기 시작하였다.

 

대학 진학 후 창작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였다. 끝없이 걷고 끼적이고 고치고 읽어보았다. 손을 뻗어 만져보고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바라보기도 했다. 어느새 그 시간 안에는 많은 글자와 소리가 모여 있었고, 그것들은 나를 계속 앞으로 걸어가게 해주었다. 그리고 나의 세계는 20231, 이렇게 시조라는 옷을 입고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갔다.

 

문학적 피를 물려주신 부모님과 형, 가르쳐주신 은사님, 웃고 울며 함께 공부한 선후배들, 부족한 작품을 뽑아주신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유진수

 

-1996년 서울 출생

-희대 국문과 졸업

-동 대학원 국문과 석사과정 수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