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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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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4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당선작 등록일 2024.01.05 10:47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524

[2024 서울신문 신춘문예-시조 당선작]

 

 

어시장을 펼치다 


강성재

 

 

초승달 어둑새벽 선잠 깬 종소리에
경매사 손짓 따라 어시장이 춤을 추고
모닥불 지핀 계절은
동백꽃을 피운다


항구엔 수유하는 어선들의 배냇잠
활어판 퍼덕이는 무지갯빛 물보라
물메기 앉은자리 곁
삼식이도 웃는다

눈뜨는 붉은 해 동녘 하늘 헤엄치고
활강하는 갈매기 떼 생사의 먹이 다툼
금비늘 남해 바다엔
파도가 물결친다

자자자떨이를 외치는 어시장 안
손수레 바퀴가 풀고 가는 길을 따라
햇살도 날개 펼치며
오금 무릎 세운다

 

 

심사평 - 다양하고 압축된 삶의 층계, 감각적 표현으로 끌어내

이근배·서연정

 

응모작을 살피면서 작품 수준이 예년보다 고르게 향상된 느낌을 받았다기후위기요양원고독사 등 사회문제나 종교적 인식인생 성찰고향이나 혈연 등에서 끌어낸 원초적 그리움예술품에서 받은 감동 등 소재도 다양했다시조에 대한 이해참신한 시적 발상개성적인 형상화주제 의식을 끝까지 밀고 들어가는 힘 등을 심사 기준으로 세웠다부실한 한 수로 완성도가 무너진 작품개인적 감상에 빠진 작품상투적 표현에 머문 작품 등을 먼저 내려놓았다그런 작품들은 삶의 고난을 너무 쉽게 이겨내고 깨달음에 안주하고 있어서 무난히 읽히지만 관념적 서술로 삶의 실질적 모습이 덜 드러났다.

봄을 할인하다는 벚나무꽃받침꽃 마트꽃구름벌 나비꽃잎들 등 꽃으로만 치우친 봄 풍경이 삶의 실상을 과연 어느 만큼 담아내고 있는지 의아심이 일었다. ‘동백꽃을 복사하다는 윤슬 오래 헤아려 밀려오는 꿈결처럼’, ‘오랫동안 욱신댄 앙가슴이 고요해지기까지 진통의 실상이 관념으로 일관돼 이미지화가 미흡했다. ‘꿀벌 실종 사건은 생태환경 위기에 울리는 경종을 시적 메시지로 전환하는 데 공을 좀더 들였더라면 좋았겠다. ‘담쟁이의 말은 높고 넓은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중년 사내의 삶을 담쟁이로 형상화하는 숙련된 필치를 보였는데 뭔가 절실한 담쟁이의 말이 끝내 들리지 않은 채 마무리됐다.

당선작 어시장을 펼치다는 죽은 고기도 있고 산 고기도 있는 어시장이라는 다양한 삶의 층계 속에서 시를 끌어냈다경매사의 손짓에 따라 바쁘게 주고받는 삶의 장이 네 수 속에 잘 녹아 있다. ‘모닥불 지핀 계절’,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새벽 활기는 동백꽃을 피우고 퍼덕이는 무지갯빛 물보라를 일으키는가 하면, ‘물메기 앉은자리 곁삼식이도 웃는다에 이르러선 어시장으로 압축된 삶의 터전에 애틋함이 담긴다. ‘활강하는 갈매기 떼 생사의 먹이다툼이 일어나는 삶의 현장을 관념적 서술에 빠지지 않고 감각적 표현으로 그리는 힘이 탁월하다당선을 축하하며 좋은 시인으로 우뚝 서기를 바란다.

 

 

당선소감 - 삶 다하는 날까지… 물보라 치는 싱싱한 시조 쓸 것

▲ 강성재 서울신문 2024 신춘문예 시조 당선자

당선 전화를 받은 날은 정년퇴직 후 어렵게 재취업한 국가산업단지의 어느 일터에서 온몸을 바쳐 일하다가 조금 여유가 생긴 날이었습니다제가 서 있었던 길 가장자리 공터엔 자라는 나무는 없었지만겨울 속 봄인 듯 민들레도 있었고 한 무더기 토끼풀 군락도 파릇하였습니다꽃송이를 몇 개씩 달고 피어나 있는 것이 경이롭기도 하였습니다그러나 주말이면 한파가 밀려온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생명 있는 풀꽃의 운명이 안쓰럽기도 하였습니다저는 꽃을 더 보기 위해 허리를 숙였고 얼굴도 가까이 가져갔습니다그때 군락의 한가운데서 네 잎 클로버가 제 눈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일부러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기에 좋은 일이 있으려나 싶어 사진으로 담아 두었습니다.

몇 시간 뒤 제게 기적처럼 당선 소식이 휴대전화로 날아왔습니다언제나 낮은 곳에 몸을 두고 푸른 하늘을 꿈꾸며 열심히 살아왔지만 저의 꿈은 항상 늦게 이루어졌습니다젊은 날엔 동인 활동을 하며 무작정 문학의 강가를 서성였고 서른 즈음 신춘문예 시 부문 최종심에도 올랐었습니다만 닿을 듯 닿지 않는 신기루 같았던 당선 소식은 아득히 멀어졌습니다그 기억의 강조차 흘러내려 바닷속으로 사라져 갈 때쯤 만학도의 길을 걸었습니다지난 5년간 절치부심 시조 쓰기에 매진했고 4전 5기 끝에 마침내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박사과정 지도 교수셨던 김중일 교수님 그리고 이기호·조형래··안점옥 교수님 감사합니다문학이라는 수행의 길에서 도반이자 항상 그 열정을 닮고 싶었던 김성신 시인함께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원우들저를 아는 모든 분께 당선 소감으로 안부를 전합니다이근배·서연정 심사위원께도 생이 다하는 날까지 물보라 치는 싱싱한 시조를 열심히 쓰고 더 깊어지겠다는 약속을 하며 신년 세배 올립니다.

강성재 1961년 전남 여수 출생 광주대 경찰법행정학과 졸업 광주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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