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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옥영숙 시인 시집엿보기 등록일 2020.01.07 10:40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77

옥영숙.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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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음식의 맛과 아픈 역사와 삶의 음식 맛에 녹여낸다. 그것도 고급 음식이 아닌, 값싸고 영양이 픙부해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생선인 꽁치와 김치, 고등어와 채소, 도다리와 쑥, 메기, 보말, 낙지, 고들빼기, 재첩, 콩나물처럼 오랜 기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음식과 재료를 소재로 본연의 음식 맛은 물론 그 음식에 녹아있는 삶의 맛까지 녹여낸다

                                                                                                                     -오종문 시인의 <평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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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영숙

 

200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작품활동을 하다.

시조집 <사라진 詩> <완전한 거짓말> <흰고래 꿈을 꾸는 식탁>을 출간하다

열린시학상, 경남시조문학상을 수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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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아프다,

새벽 세시 반

쌀 씻고 밥을 한다

 

슬프다,

사는 것이

밥 먹는 일이라니

 

기쁘다,

잘 사는 것이

밥 잘 먹는 일이라서

 

 

 

봄비 공양

 

 

 

죽비를 꺼내 들어 봄비를 매질하나

 

구름의 설법 듣고

 

산 아래 좌선하는

 

통도사

 

홍매와 몇 송이

 

소문보다 일찍 폈다

 

 

 

비양도 보말죽

 

 

섬 속의

또 다른 섬

비양도 등대 간다

 

시인의

허기진 배에

본섬의 그리움 찍는

 

또돗한

죽 한 그릇이

따뜻한 시詩 한 편이다

 

 

 

첫국밥

 

 

이마가 나오면서 귀빠진 세상 첫날

지독한 폭염보다 더 무서운 산통끝에

힘든 몸 일으켜 앉아 첫국밥을 먹는다

 

찰밥을 먹어야 덕이 있다는 생일날은

삼신할매 지앙밥에 몸풀고 다시 살아

고래도 새끼 낳으면 미역밭 찾아간다

 

땀나고 터진 입술에 헛헛한 뼛속까지

첫국밥 한 사발에 말라붙은 젖이 돌아

단전에 힘 들어가고 백 년의 잠을 잔다

 

 

제주 샛담

 

 

고백할게요, 어머니

보통 때는 모르지만

외롭다 눈물 난다 먼저 손을 내밀면

국그릇 뜨겁지 않게 상한 속을 달래줘요

 

목숨 건 물질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홑옷의 물소중이에 늑골이 묵직할 때

제대로 맛 낸 전복죽

입천장이 뜨거워요

 

담 하나 사이에 둔 시어머니 속마음을

샛담 살짝 넘어와 눈치 보며 전하는 말

쇄골이 아름답다던

그 말씀은 기억할게요

 

 

 

청수리 반딧불이

 

 

이윽고 밤이 오고 그때 그 어둠 속에

끈질지게 찾아간 곡진한 그대사랑

불타는 심장 끝 수 없어

고백의 불 질렀다

 

작고 노란 불란지 왁자하게 내려앉아

청수리 환한 소문 고리에 등을 단 

한 밤이 빛나는 밤을

사람들 염탐하다

 

 

제비산 고양이

 

 

은상의 샘을 지나 노비산 올라가면

점사를 잘 본다는 무당집 깃발 하나

노산의 그 집 앞을 지나 옛동산을 지킨다

 

저 멀리 합포만을 열심히 매립 중이고

아랫녘 맞바람도 숨이 차 돌아가면

낮달은 빚쟁이처럼 가고파를 바라본다

 

어느 때 순풍 타고 명성을 되찾을까

잊혀진 악보 같은 청라언덕 대책 없고

봄볕에 제비산 고양이 등허리만 긁고 있다

 

 

물매 곰솔나무

 

 

오래전 인기척 끊긴 폐쇄된 유원지에

바람의 손잡이가 돌리는 바람개비

수산봉 희감고 도는 지난날의 안부이다

 

비 오면 들려오는 4.3의 군홧발소리

짐승들 울부짖음 환청으로 들어앉아

해송은 밑둥치 터져 시멘트로 봉합했다

 

마을을 삼킨 물이 실향민 마음 삼킨

저수지 눈 오는 날 흰곰으로 앉을 때면

침묵의 수행자처럼 다소곳이 인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