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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Home > 시조감상실 > 시조시인 시집 엿보기
제목 백점례 시인 시집엿보기 등록일 2020.01.03 15:51
글쓴이 시조나라 조회 397

백점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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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점례

2011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 천강문학상 시조 대상,

한국시조시인협회 신인상, 중앙시조대상 신인상,

나래시조 젊은시인상 수상, 시조집 <버선 한 척>, <나뭇잎 물음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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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보리밭

 

 

 

 

저 녹녹한 땅에

엎드려보고 싶다

 

차오르지 못하는 건기의 몸을 붙여

풀물 든 바람의 혀에 긴장한 벌레처럼

 

구태의 마른 허물 뭉쳐내는 구름 아래

잠든 핏줄 마디마디 흩고가는 초록 물결

 

일어나, 파도치거라

멈칫대는 사람아

 

 

 

아버지의 말

 

 

 

틀니를 걷어내자 우물이 드러났다

뉘 하나 빠질 듯이 깊슥이 파인채로

 

고인 말 퍼내고 싶어

움찔거리는 파장으로

 

거친 껍질 부수고 깬 굴곡이 팔십 평생

모 닳다 모지라져 뿌리까지 뽑힌 자리

 

끝내 다 못 전한 말을

우물우물 삼킨다

 

 

 

경칩 무렵

 

 

 

비 그치고, 밟는 흙이 밤처럼 부드럽다

 

속 환히 보이는 가난한 터전으로

 

저만큼 햇살은 벌써

 

밭고랑을 치고 있다

 

지난날 엉킨 덤불도 풀씨의 울이 되고

 

바람과 살얼음도 깍지 풀어 넘는 길에

 

떡잎이 기재개를 켜나

 

발바닥이 간지럽다

 

 

 

 

어떤 그림자

 

 

 

 

건물이 높아질수록 그늘도 자라났다

 

층마다 숨어있던 우울이 흘러나와

 

눈 밑의 다크서클이 또 한 뼘 길어졌다

 

탈출을 꿈꾸는 틀에 갇힌 사람들

 

당겨보는 바람의 길 닫힌 창에 튕겨가

 

 

그림자, 속치마처럼 저린 발등을 감싼다

 

 

 

구두 수선공

 

 

 

등 굽은 저 사내의 가위질이 능숙하다

 

작은 창에 어른대는 하늘 한 필 잘라와서

 

엇나간 각을 자르고 짧은 생각 덧붙인다

 

 

무늬만 가죽 같은 비닐 레자 인생사를

 

지긋이 글어당겨 헤진 자국 여미는 손

 

뒤축이 무너질까 봐 못 박기도 결연하다

 

 

거칠고 뻣뻣한 버릇 낫낫하게 다잡아서

 

해 뜨는 세상 속으로 굽 높여 내보내는

 

지문도 뜯겨져 나간 한 생이 반짝, 빛난다

 

 

 

실업

 

 

 

밭둑가에 버려져서

 

바람이 무성한 날

 

속수무책 찢겨지며

 

몸 바쳐 지킨 저 자리

 

못 떠난다는 아우성

 

 

밀물은 온다

 

 

 

 

양수 다 빠져나간 서해 어느 퇴적층

 

마뜩찮은 돌개바람 거드름을 피우는 곳

 

감풀에 유선형 그가 발목 오래 묶여있다

 

숨은 여 가늠하며 물보라 일으키던

 

찬물때 기다리는 물갈퀴 야윈 동력선

 

땡볕에 가쁜 숨으로 모래벌판 기어가나

 

땅별의 자오선 지나 바다를 몰고 온 달

 

마침내 알섬 너머 물보라 가까워지며 

 

기어코 밀물은 온다, 견딜만한 간조였다

 

 

 

 

 

실업

 

 

 

 

비닐조각 흐느낀다

 

밭둑가에 버려져서

 

바람이 무성한 날

 

속수무책 찢겨지며

 

몸 바쳐 지킨 저 자리

 

못 떠난다는 아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