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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수
경북 고령 출생. 2007년 <현대시학> 등단.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시학 젊은시인상. 천강문학상 시조대상 수상
허천뱅이의별*의 밤
목놓아 불러봐도
메아리 없는 먹빛 하늘
진등한둥 걸어 왔을 절름발이 키 큰 사내
떼 지어 따라 온 어둠 가뭇없이 부려놓다.
점 점 점 멀어질수록
디룽대는 대기권 밖
잔등을 쓰다듬으며 등걸잠 뒤척일 때
멍이 든 별 하나가 가슴에 와 안긴다
*허천뱅이별 : 샛별의 다른 이름
3대 조폭
아래뜸 마늘밭에 얼굴 내민 3대 조폭
바랭이파 뚝새풀파 쇠비름파 패거리 모여
그믐날 어둠을 틈타 쇠울짱을 넘어 왔다.
마을회관 스피커로 조폭 출현 비상 걸고
괭이를 쥔 밭주인의 빈틈없는 검문검색
비트* 속 몸을 숨긴 채 먹물 푼 밤 기다린다.
밤도와 득실대는 찰거머리 조직폭력배
참다못한 인근 경찰 비상소집 회의 끝에
농약 탄 최루탄 발사, 계파조직 와해됐다.
* 비트: 간첩 활동 따위의 은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숨어 지내는 곳.
울음경전
늙은 절집 앞마당에 검버섯 핀 고목나무
먹빛 장삼 떨쳐입은 말매미 동자승이
뉘 몰래 우듬지 앉아 백팔번뇌 덜고 있다.
무에 그리 애타게도 절절한 것 남았는
밤낮없이 뒤척이던 속세 떠난 그끄저께
해거름 목이 쉬도록 울음경전 줄줄 왼다.
꽃의 둔부
떠나간 봄 빈 자리에 초여름이 짐을 풀자
장수경로당 할머니들 아장걸음 재우치고
수목원 소풍 나온 듯 구절초가 다 모였네.
원추리꽃 똑 떼닮은 하마형 옆집 할머니
외동아들 달랑 낳고 완경(完經)을 선언했나?
서너 평 푸진 궁둥이 노란 남방 입고 섰네.
닭의장풀 쏙 빼닮은 여리디 여린 울 어머니
아들 네 명 낳느라고 살이 축난 엉덩이에
보라색 윗저고리로 허리춤을 슬몃 덮네.
장대비
욕쟁이 평산 할매 세속 곤 때 벗겨내고
영감 찾아 구만리 길 서둘러 떠나는 날
하늘도 악다구니 칠까, 눈치 한껏 보고 있다.
산역 마친 산역꾼들 흙삽 씻는 늦은 오후
저승 문 앞 당도하여 하늘 모서리 찢는 그때
못 다한 서 말 닷 되 욕을 그녀가 퍼붓는다.
겨울 삼마제
동살 스릇 그러모아 숨결 고른 황금 경전
벌길 걷던 된추위가 시경詩經 한 줄 읽다 말고
푹 꺼진 올빼미 눈두렁
볼그족족 물들였다.
풍경소리 그러모아 허공 매단 바람 경전
탁발 나온 곤줄박이 서경 書經 반쪽 외우느라
이따금 산 메아리를
이명처럼 끌고 온다.
숫눈 아름 그러모아 가슴 품은 마음 경전
달포 남짓 쉬엄쉬엄 역경易經 몇장 풀다보면
그 또한 겨울 삼마제에
정신줄을 놓고 있다
그대가 몰래 와서 얼굴 한 번 내밀어도
천근만근 내 심장이
우레 치듯 쿵쾅대고
그 물 속
햇살을 건져 산빛 장경 풀어낸다.
그대가 또 찾아와서 허리 슬몃 껴안아도
수만 볼트 내 가슴이
불꽃 마냥 터뜨리고
또 한 번
산 그림자 몰래 사랑앓이 하고 있다.
그대가 마지막 와서 손 흔들며 돌아서도
반 평 남짓 내 눈물샘
억수처럼 쏟아지고
긴긴밤
풀 죽은 연못도 잠 못 들고 뒤척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