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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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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라는 장르
봄 오는 길목에 이따금 갇히곤 한다
두부 같은 날들이 책상 위에 물렁하다 다 식은 커피 잔 읽지
못한 시집까지 쌓아둔 구름 조각들 두서없이 축축하고 수도
꼭지 잠그는 걸 금세 또 잊었는지 행운을 꿀꺽, 삼켜버린 부
엉이가 한눈팔지도 않고 무슨 주문을 외우는지 거실 밖 이월
바람이 자꾸 창을 두드려 꽁꽁 얼려두었던 내 안의 세포들은
옛집 슬레이트 처마 끝에 매달려 싱겁고 싱거워진 계절을 훌
쩍이다가 사진 속 넉넉한 아버지가 두 스푼 된장을 풀어 끓여
낸 아침의 시를 맛있다, 연신 드시는 목소리를 듣곤 해
첫 울음 항상 놓치는
눈물이 참 싱겁다
아직도 나는 보리다
맨땅을 뚫고 나온 청보리 싹을 보거라
열 칸짜리 세상에다 또박또박 써야지
아버지 푸른 말씀들
처음처럼
듣는
봄
장마
산수국 꽃잎 아래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당신은 띄어쓰기도 없이 눅눅한 시를 쓰고
한 번씩 숨넘어갈 듯 바다 향해 울었다
섬
한 번도 젖은 발목을
내보인 적 없었다
달무리 진 밤이면
등이 휜 기침 소리가
환해장성을 넘는다
토르소
청량사 마당 구석에
우두커니 저 고사목
눈도 귀도 다 잘라내고
맨몸뚱이로 선다면
내 안의 군더더기를
지워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