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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송
경남 고성 출생
1978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작품집 <겨울 달빛 속에는>, <제철공장에 핀 장미는>, < 안테나를 세우고>, <응시>
평론집 <우리시의 현주소>
성파시조문학상, 한국시조작품상, 이호우. 이영도 시조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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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수목원
일손을 거둔 산은 안식에 들어 고요하다
계절 따라 초록물을 풀어 쓴 얘기들이
숲속의 작은 도서관 서가에서 숨을 쉰다
그 숨결 받아내어 겨울 행간 비춰보면
내 생에 나뭇결에 얼룩진 삶의 무늬
바람은 날을 세우고 옹이 하나 깎아낸다
수도승 영혼인 양 침묵하는 숲을 지나
눈을 인 먼나무가 자기 뜰을 밝힌 아침
빨갛게 옹근 꿈들을 겨울새가 쪼고 있다
바람 변주곡
바람은 언제 봐도 내 안에서 먼저 분다
눈짓따라 길 떠난 곳 동해 바다 바람 손은
햇살 꿴 삼 천 바늘로 물비늘을 뜨고 있다
심해선 긴 묵언을 눈에 담아 보이도록
처음 그 입김으로 활처럼 휘어내며
매 순간 무한을 일궈 들숨 날숨 쉬는 영혼
해안을 지킨 솔은 그녀가 부는 목관악기
연주하는 선율 따라 나이테는 파문일고
해조음 음계를 짚어 삶의 결을 빗고 있다
무릉도원
도화 뜬 강 저편에
문명 없는 삶이 있어
너는 내 속에 있고
나는 네 속에 있어
너와 나
나누지 않고
한 뿌리로 사는 마을
슈퍼문
1
그대를 멀리 두고 그리워한 만큼이나
그대는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고
내안內案은 인력의 반경에 밀물 들듯 이는 사랑
2
궤도 안 나를 향해 탑을 돌듯 모은 일념
그 앞에 내 중심은 원력으로 부풀어서
둥그런 고아배로 밝은 소망하나, 둘이 짓다
매화 핀 날
채비가 덜 된 채로 봄맞이 나선 2월
하루를 더 유예하신 윤년이 돌아와서
예년의 서툰 행보에 숨을 조금 틔원준 날
순실한 믿음보다 설렘이 앞을 가려
조금하지 말 일이라 채근하며 깜박 졸 때
맵싸한 눈바람 속에 도적같이 오신 매화
사진 1
그녀는 나를 보며 당기듯이 누워있다
명암이 교차하는 침실은 그윽한데
창으로 투명한 신록 빛살처럼 흘러든다
바람 이는 너 능선은 아카시아 향기 날고
얇은 천에 내비치는 분홍색 적곷판이
그날 밤 맑은 하늘에 달꽃으로 인화되다
만추
우리 삶을자로질러 방금 누가 지나갔다
얼룩 한 점 없이 숨을 벼린 맑은 기운
다홍빛 타는 별들이 땅끝으로 지고 있다